수술대 위에 눕던 날
수술대 위에 눕던 날
  • 제주신보
  • 승인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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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허자, 광주대각사 주지·제주퇴허자명상원장

우리 인간에게는 ‘사고팔고(四苦八苦)’가 있다. 사고(四苦)는 생로병사이며 이 사고에 네 가지를 더한 것이 팔고인데 팔고(八苦)는 구하려 하지만 얻을 수 없는 구불득고(求不得苦),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애별리고(愛別離苦), 미운 사람을 만나는 원증회고(怨憎會苦), 원초적 본능이 왕성하게 일어나는 오음성고(五陰盛苦)가 그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사고팔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이러한 고(苦)의 틀 속에서 사로잡혀 살 수밖에 없는 고달픈 중생이 바로 우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에 나는 안과와 이비인후과 증세 때문에 제주대병원을 찾아가 입원까지 해야 했다. 웬만한 사람이면 평생 한 번도 겪기 어려운 수술을 두 번씩이나 해야 했었던 것인데 첫째 날 입원하고 둘째 날까지는 이게 웬 떡인가 싶을 정도로 깨끗한 시설과 호텔 같은 대학병원시설이 내게는 너무 과분한 것 같아서 ‘대한민국 살기 좋은 나라’를 외치며 좋아하였다.

그런데 셋째 날 수술대 위에 눕는 순간 상황은 백팔십도로 바뀌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들은 계속 편한 질문을 해가며 친절하게 나를 안정시키려 애쓰는 모습이었지만 점점 더 나의 속마음은 7년 전 전남대병원에서 위암수술을 받던 그 당시가 떠올랐다. 그때도 솔직히 마음은 편하지 못했다. 아무리 담대해 보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역시 불안한 마음은 금할 수가 없었다.

오늘도 그랬다. 4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병실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3시간은 수술이었고 나머지 1시간은 회복실에서 깨어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자동차도 고장이 나면 AS를 받듯이 사람도 어딘가 아프면 수리를 받아야 한다. 집도 리모델링을 해야 할 때도 있고 담장도 무너지면 고쳐야 한다. 이 세상에 ‘쓰임새’가 있는 모든 것들은 ‘아나바다’, 곧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써야 한다.

불가(佛家)의 천수경 첫 머리에도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 나오는데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곧 여기에서 ‘수리’는 범어의 수디(sudhi)로부터 비롯된 말로서 ‘깨끗이 하다’ 또는 ‘고치다’의 뜻이다. 이는 고장 난 것을 고쳐 쓰라는 말이며 입으로 지은 죄(구업)를 참회하고 참다운 말을 사용하라는 의미이다. 말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함부로 내 뱉듯이 쓰는 것은 그냥 말이요 신중하고 점잖게 쓰는 말은 말씀이다. 내가 그동안 말을 해왔는지 말씀을 해왔는지 송구영신(送舊迎新)하는 즈음에 스스로를 되돌아 봐야겠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듯이 내가 하는 말이 상대의 가슴에 못 박는 일은 없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자칫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 혹여 상대방에게 비수(匕首)처럼 꽂혀서 큰 상처를 남기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석가는 “너희 입 안에 3치의 붉은 도끼가 있으니 잘 쓰면 사람을 살리고 잘 못쓰면 사람을 다치게 한다.”고 경계하는 말씀을 남긴 것이 아닌가 한다. 자고로 말은 삼가야 한다. 말은 내 입안에 있을 때까지는 내 것이지만 이미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내 것이 아니다. 기해년 새해에는 내가 한 말로 인해서 그 누구도 상처받는 일이 없기를 다 함께 노력하는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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