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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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선 수필가

새해가 밝았다. 붉은 돼지 세 마리씩이나 강한 기운이 들어 있는 해이다. 올 한해에는 기운을 받아 바라는바 모두 다 이루어지기를 바라본다.

‘살다 보면 힘들 때도 있고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다.’라는 노랫말이 떠오른다. 예견하지 못했던 일이 다가와도 순리대로 받아들이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는다. 누구나 지나고 보면 ‘어찌 저 산을 넘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나는 지난 한 해를 어찌 보냈는지 정신이 없었다. 연로한 부모님이 계셔서 년 초부터 초조한 마음 가득 찼었다. 다가올 운명이려니 여기며 대처하였다. 요양원에 계신 시어머니가 갑자기 침대시트 가득 혈뇨라는 소리에 혼겁을 먹었다. 병원 응급실로 이송하여 갖은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별 이상 없으니 지켜보자고 하였다. 서너 차례에 걸쳐 응급실을 오갔다. 나중에는 폐렴까지 앓았고 한 달 후에는 또 퇴원시켰다.

나는 몇 번이나 수의를 점검하였다. 시어머니는 오랜 병상 생활을 하여도 본래 마음은 아니었으리라. 기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부모에게 최선을 다했는지 자신에게 되묻기를 반복하였다.

년 초까지 두 어머니가 살아있다는 일이 행복하다고 자부해왔다. 십여 년이나 앓고 있는 시어머니가 항상 마음에 걸려 친정어머니한테는 마음을 두지 못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건강하였으니까. 외식을 한번 하려해도 병상에 계신 시어머니 생각에 마음대로 나서지도 못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병원과 요양원을 맴도는 일상이 되던 중이었다.

친정어머니로부터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았다. 얼마나 아팠으면 대상포진 걸려 봤느냐고 물었을까. 약과 주사에도 차도가 없자 큰 병원의 검사를 받게 되었다. 보름 후의 검사 결과는 췌장암 말기였다. 남은 시한은 한 달 반이라 한다. 청천 벽력같은 소리였다. 친정어머니는 걸음걸이와 정신력이 너무나도 좋았기에 예외일 줄 알았다. 내가 6개월의 시한부였던 시아버지도 2년 반이나 모셔 보았기에 당연히 일 년은 견딜 줄 알았다.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잘하라는 말 이제야 알겠다. 떠나니 대답 없고 돌아오지 않는다.

년 초에 친정어머니는 시어머니 걱정하며 면회를 갔다 왔다. 두 어머니는 더운 여름을 넘기기란 얼마나 힘들었을까. 7월에 시어머니가 서천 꽃밭으로 올라가셨다. 시어머니 사십구 제를 지내는 과정까지도 친정어머니는 자세히 물었다.

웬걸. 친정어머니는 추석이라도 넘길 줄 알았건만 8월에 갑작스레 혈압이 떨어지면서 응급실로 갔다. 입원하여 하룻밤도 넘기지 못했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을 일일이 잡고 고맙다는 말을 하여도 입원 인사인 줄 알았다. 내일 아침에 오라는 인사가 마지막일 줄이야.

내가 다니는 절에서 두 어머니 사십구 제를 모셨다. 지쳐도 의무로 알고 감내하였다. 20일 간격을 두고 두 사돈이 어깨동무 하였으니 사십구 제도 월요일에는 시어머니 목요일에는 친정어머니 제를 지내는 일과가 되었다. 고유문까지 작성하여 낭독해 드렸다. 염라대왕 앞에서 심판받는 날에는 좋은 곳으로 갔으리라.

그러다 보니 가을이 되었다. 낙엽이 뒹구는 것도 황혼의 느낌이었다. 죽음도 멀리 있지 않았다. 인생은 허무 자체였다. 나에게 견딜힘을 키워 주려는지 대상포진과 기관지염까지 불어 닥쳤다. 올 것이 왔구나. 어머니 얼굴을 떠올리며 버텼다.

이보다 더한 다사다난이 또 있을까. 해야 할 일 때문에 온 몸을 아프게 하였다. 더 행복하고 좋은 일을 주려고 온갖 시련이 한꺼번에 불어왔으리라.

굳건히 일어나서 새해를 맞이하였다. 붉은 기운으로 동이 튼 새해 첫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여 본다. 이제 나에게는 기운차고 행복 된 일만 가득 차리라.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거침없이 다가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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