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옷, 한복
우리 옷, 한복
  • 제주신보
  • 승인 2019.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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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양진, 수필가

오래전 한복 가게에서 일을 배울 때이다. 어느 날 넉넉한 풍채의 할머니와 중년 여인이 가게 문을 밀치고 들어와 의자에 앉더니, 숨 돌릴 틈도 없이 완성된 저고리를 보자고 했다.

아무리 ‘손님은 왕’이라지만 옷이 완성되기 전 잘하고 못하고를 시험대에 세우는 건 상대방에 대한 도리가 아니잖은가. 그분들을 향한 내 시선도 이리 곱지 않은데 주인 입장에선 오죽할까. 하지만 찾아온 고객에 대한 예의인지 아니면 옷을 짓는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에선지 그들 앞에 당당히 펼친다.

자연을 닮은 여자 저고리. 초승달의 선을 옮겨 놓은 듯한 깃머리, 둥글다 살짝 올라간 섶코, 오름의 선처럼 물 흐르듯 순하게 이어진 소매와 도련. 양장에선 만나지 못하는 곡선들, 잘 나타내야 ‘장이’라 칭할 수 있었다.

그 할머니는 저고리의 깃머리와 섶코를 찬찬히 훑어보더니 고집을 내려놓은 듯 몸 치수를 재고 떠났다. 예전에는 이처럼 옷을 맞추는 사람도 한복에 대한 일가견을 내보였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는 한복 시장만 비켜가지 않는다. 예식의 간소화와 대여점의 등장. 입을 기회가 적은 소비자의 눈은 한복의 선과 꼼꼼한 바느질보다 화려한 색상이나 디자인으로 옮겨 갔다. 사각사각 옷감 자르는 소리를 좋아했지만 나는 수요자의 감소로 다른 업종으로 이직해야 했다.

눈에서 멀어지면서 한복을 잊고 지냈다. 그러다 지인과 다녀온 전주 한옥마을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개량한복을 입고 셀카봉을 든 젊은층. 하루를 특별하게 보내려는 그들에 의해서 한복이 대중화되고 있었다. 눈을 두는 곳마다 그 모습이 하늘거리는 나비의 날갯짓으로 보였다. 더 이상 한복은 어떤 행사나 명절 때 잠깐 입고 벗는 그런 용도가 아닌, SNS에 올리는 보여주기 식 요즘 세태에,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충분한 매개체 역할로 있었다. 또 다른 한복의 모습에 내심 기뻤다.

지난해 우리 옷에 대해 왈가왈부가 많았다. 정체불명의 한복을 입을 경우 고궁에 무료 입장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서울 종로구청의 금지 방안 탓이었다. ‘과한 변형의 옷은 한복이라 할 수 없다’라는 방침에 어느 선까지가 ‘전통한복’이냐는 논란이 주어져 제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었다. 바라보는 시선과 입는 사람 입장이 다른 까닭이다. 입는 이는 유행을 좇고 보는 눈은 전통을 꺼낸다.

과거로부터 연속성을 갖는 게 관습이라면 전통은 그 시대 사람들의 주관적인 가치판단에 의하여 재평가되는 창조적인 것이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한복도 조선 중기에 정착된 모습이라 하니, 전통에 기준을 세우는 것 또한 모호하다.

누군가의 말처럼 ‘퓨전음식처럼 퓨전한복은 흐름이다.’라는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흐름은 어느 틀에 갇혀 획일화된 게 아닌, 자유롭게 해석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취향이 가지각색인 것처럼 한복의 다양성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다만 해체 수준을 조율함으로써 우리 옷의 정체성을 잊지 않는 선에서. 이는 한복을 만드는 사람이나 대여업체들 그리고 입는 우리가 기억하고 있어야 할 몫이 아닐는지. 전통 없는 현재와 미래는 없으므로.

곧 설날이다. 한국적인 게 세계적이라는 말처럼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은 뽐내야 한다. 혹 옷장 안에서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한복이 있다면 그날만큼은 그 옷을 입고 맞이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