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릉과 오죽헌을 보다
영릉과 오죽헌을 보다
  • 제주신보
  • 승인 2019.01.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흥식, 수필가

늦은 봄 좋은 날을 택하여 대한노인회제주도연합회 노인대학원 제10기 동창 30여 명이 청주행 비행기를 탑승해 가슴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다.

먼저 조선시대의 가장 위대한 세종대왕릉으로 갔다.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소재하는 세종대왕릉(영릉)은 성군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 성스러운 곳이다. 세종은 조선의 제4대 왕으로서 32년간 재위하였다. 세종대왕릉은 세종과 왕비 인현왕후를 합장한 능이다. 대왕은 한글을 창제하고 측우기와 혼천의 등 과학기구를 발명했으며 아악을 정립하고 북방과 대마도를 정벌하여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 학문을 숭상하여 학자를 기르고 농업을 장려하면서 백성을 사랑한 성군이다.

왕릉은 크게 3권역으로 나뉜다. 죽은 이의 영혼이 머무는 묘역, 죽은 자와 산자가 만나는 제사를 지내는 집, 묘역을 관리하고 제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기거하는 제실로 구분된다. 안으로 들어가니 세종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세종의 주요한 업적을 모형으로, 그림으로, 자료의 형태로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어렸을 때 배운 훈민정음을 이제 어른이 되어 다시 보니 그 당시 어떻게 우리 글을 창제했는지 새삼 대왕의 어진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왕릉 안으로 들어서니 잔디광장과 영릉이 보인다. 오른쪽 계단을 따라 능으로 오른다. 능은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만 두른 합장릉이다. 상석이 두 개 놓여 있어서 합장릉임을 알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해서 앞의 상석은 혼유석(魂遊石)이다. 즉 혼을 불러내는 자리라고 한다. 능의 중앙에는 팔각의 장명등이 있으며 각종 문인석, 무인석, 망주석, 동물석 등 석물이 잘 배치되어 있다. 뒤에는 숲이 우거지고 앞쪽은 잔디광장으로 전망이 매우 좋다. 당국은 영릉의 성역화 사업으로 잘 정비해 놓았다. 넓은 주차장이 있고 솔향기 가득 풍기는 나무 숲이 있어 가족 나들이에 정말 좋을 것 같다. 먹고 즐기는 것도 좋겠지만 하루쯤은 경건한 마음으로 우리 선조들의 업적과 얼을 되새겨보는 것도 매우 뜻깊은 일이다.

다음에는 겨레의 어머니와 겨레의 스승이 태어난 성지 강릉 오죽헌을 보기로 했다. 우리나라 만년 역사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화폐 중에 오천 원권과 오만 원권 화폐의 주인공 두 분이 계시는 곳이 오죽헌이다. 오죽헌은 처음 온 것은 아니나 옛날 와 봤던 오죽헌이 아니었다. 규모가 엄청 넓어지고 웅장하여 다 돌아볼 수조차 없었지만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이 바로 오죽헌으로 으뜸가는 명소이다. 율곡 이이는 과거시험에 9번이나 모두 장원급제 한 인물이며 조선 성리학을 구축한 기호학파의 대표이다. 오죽헌은 집 주위에 검은 대나무가 많아서 지금도 오죽헌이라 불린다. 율곡 이이동상 앞에 씌어진 견득사의(見得思義)라는 글은 “이익을 보거든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가르침으로 우리 공직자들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글로써 살아가면서 이익을 볼 때 무엇을 먼저 생각해 봐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말씀이다. 또한 예언자적 능력도 뛰어나 임진왜란을 미리 예견하고 10만 양병 설을 주장했다. 다시 한 번 나의 머리를 숙여지게 한다. 이번에 오죽헌을 보니 ‘사임당 빛의 일기’가 또 하나의 명소로 많은 관광객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는 걸 느끼며 나는 금번 오죽헌 여행으로 심신을 깨우치고 돌아가야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