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동
봄동
  • 제주신보
  • 승인 201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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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수필가

지금은 겨울 중에도 한겨울, 대한이라는 절기가 남아있다. 춥고 지루하다고 봄타령을 하기엔 섣부른 감이 없지 않으나 입이 먼저 안달을 낸다. 특히 타향에서 겨울을 나고 있으니 그 조급증은 더하다. 매일 먹는 김장김치도 물리고 뭔가 입맛을 돋울 게 없나 싶어 마트에 가면 두리번거려지는 요즘이다.

저녁 찬거리를 사려고 마트엘 갔다가 매대에 수북이 쌓인 봄동을 보았다. 고갱이가 노르스름한 것이 구미를 확 당겼다. 남해인걸 보니 남쪽엔 벌써 봄기운이 도는 모양이다. 욕심껏 누르며 봉지 가득 담았다. 마음은 이미 긴 겨울의 한 토막을 성큼 건너 봄을 향해 가고 있다.

강된장을 끓이고 봄동을 올렸다. “벌써 봄동이 나왔어?” 남편의 손이 무엇보다 먼저 봄동으로 갔다. 나도 큼지막하게 쌈을 싸서 입에 넣었다. 혀에 닿는 순간 서로를 보며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무슨 봄동이람. 배추는 추위에 바짝 독이 오른 듯 뻣뻣하고 질기고 단맛도 없다. 입맛이 싹 가셨다. 나만이 아니라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에겐 고향음식에 대한 허기가 있다. 제철에 먹었던 것들이 기억 속에 인이 배겨서 심신이 부실해질 때마다 그게 떠오른다. 그러한 것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나는 유독 봄동에 꽂혀서 성급하게 봄을 기다린다.

아버지는 해마다 김장 배추를 캘 즈음에 봄동으로 먹을 배추씨를 일부러 파종했다. 그것들은 싹을 틔우고 겨우내 노지에서 한파를 견디어냈다. 마치 홍역을 앓는 아이처럼 누르끼리한 얼굴에 고갱이만 떼꾼한 채. 그러다가도 봄기운이 도는 걸 어찌 아는지 바짝 옹송그려 오골오골해졌던 속잎을 기지개 펴듯 쭉쭉 폈다. 겨울 막바지에 눈이 내리고 그 눈 속에 파묻혔어도 그때부터 이미 봄동이었다. 그걸 캐서 눈을 탈탈 털고 국을 끓이거나 쌈을 싸먹으면, 새로운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 그게 어릴 적 내가 가장 먼저 맞던 봄이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떴고 어머니는 무기력증을 겪으며 두어 해를 넘겼다. 그때 어머니가 가장 먼저 한 일이 텃밭에 배추씨를 뿌린 일이었다. 반평이나 될까. 파종시기를 넘긴 초겨울이었고 종자도 두어 해나 묵은 거였다. 그건 아버지가 당신에게 죽음이 온다는 걸 모른 채 다음해에 파종하려고 준비해둔 씨였다. 어머니는 서랍에서 배추씨라고 적힌 봉투를 발견하자 때도 철도 생각하지 않고 호미로 언 땅을 쪼았던 거고.

배추는 엄동설한에 싹을 틔우고 숟가락만한 잎을 서너 장 달았다. 그러고는 죽을 동 말 동 겨울을 나고 입춘을 넘기며 이름값을 했다. 허나 그것들은 볼 때마다 봄기운은 커녕 어머니의 젖은 눈처럼 아프고 먹먹하기만 했다. 어머니조차 손을 대지 않은 눈치였다. 삼 월이 되자 봄동은 무정하게도 꽃을 피웠다. 그 덕에 침울하던 집 한 언저리가 노란빛으로 화사해졌고,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의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다. 가끔 눈물이 그득한 어머니의 눈과 마주치긴 했으나 예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해맑은 얼굴에 날카로운 비수를 품은 것이 이곳 서울의 겨울이다. 맑게 갠 하늘에 착각하여 옷을 대충 입고 나갔다가 퍼렇게 시려 툴툴거리며 돌아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괜히 그것도 타향살이 탓으로 돌린다. 먹거리는 또 어떤가. 마트에 가면 계절 상관없이 넘쳐나는 것이 식재료지만 뭔가 생긴 것도 낯설고 생산지도 낯설어 망설여진다. 굳이 고향에 목을 메는 건 아니나 갈급증으로 괜스레 걸어보는 트집이다.

저녁 늦게 제주에 사는 벗이 카카오 톡으로 활짝 핀 동백꽃과 수선화를 보냈다. 그걸 보면서 지금쯤 봄동도 운신을 하고 있겠다는 마음이 또 동한다. 조만간 어머니에게서 봄동을 보내겠다는 기별이 올지도 모르겠다. 입 안에 침이 고이며 입 꼬리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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