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마음 담는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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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생존에 필요한 공기와 밥을 빼고 말만큼 중요한 게 없다. 생각이나 감정을 주고받는 의사소통은 일차적 기능에 불과하다. 말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불화를 화평으로 이끄는 것도 말이고, 논리를 폄으로써 모순을 정반합의 변증법으로 지양하는 중심에도 엄연히 말이 있다. 말 없는 논변이란 있을 수 없다.

한데 말은 이런 엄청난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공격적·파괴적 역기능을 갖는다. 독백은 특수한 경우이고 말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건네는 상대가 있다. 그래서 말은 말한 사람에게 돌아온다. 산울림보다 더 적확히 되돌아와 자신에게 꽂힌다.

좋은 말은 웃는 얼굴로, 나쁜 말은 잔뜩 성난 얼굴이 돼 돌아온다. 명암과 희비가 교차한다. 그뿐 아니다. 한번 내뱉은 말은 졸졸 뒤를 따라다니며 운명처럼 옥죄기도 한다. 그만큼 말에는 파장이 있다. 험담은 격렬하게 세상 속으로 번져 나간다. 막힘이 없다. 일단 번지기 시작하면 주워 담을 재간이 없는 게 말이다. 좇아갈 수 없는 바람 같은 것, 그게 말의 속성이다.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사람을 사귈 때는 그 사람의 말이 간략하고 기운이 차분하며, 성품이 소박하고 뜻이 검약한지 살펴야 한다. 마음속에 계교(計巧)를 품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교제해선 안되고, 뜻이 허황되거나 지나치게 떠벌리는 사람과도 사귀어선 안된다.” 《연암집》에 나온 말이다. 실학파 박지원은 사람을 사귈 때는 그 사람의 말부터 살피라 일렀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이란 말이 있다.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낯빛, 그러니 아첨하는 사람의 행태를 사진 찍듯 사실적으로 드러낸 말이다. ‘교언’은 환심을 사려고 번지르르하게 발라맞추는 말 아닌가. 우리 역사에 그런 아전이속들이 좀 많았는가. 익히 알고 있는 일이다. 경우에 따라 상대의 눈치를 살피는 거야 그렇다 치고,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알랑방귀를 뀌는 작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남는다. 말의 추락은 자존을 건드릴 뿐 아니라, 말 자체가 구겨지고 얼룩져 한없이 추해진다.

다른 사람과의 열띤 논의에, 말이 막혀 더 이상 이어 갈 수 없음에도 외려 상대방의 말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다. 도 넘게 오만한 사람이다.

막말, 빈말, 거짓말, 남을 폄훼하는 말에다 육두문자까지 난무하는 세상이다. 심지어 말 폭탄을 터트려 상대에게 아물지 않는 내상(內傷)을 입히기도 한다. 요즘 SNS (사회관계망서비스)나 유튜브가 부질없는 말의 난장이 되고 있다. 전에 듣지 못하던 가짜뉴스가 무분별하게 생산되는 것도 다른 맥락이 아니다.

경박한 말은 상대의 인격을 헐뜯어 결정적 손상을 입힌다. 폭로 사건이 터져 화제가 됐다. 폭로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내용을 세상에 알리려 고뇌가 따랐을 것 아닌가. 한데 어느 국회의원이 ‘퇴직 후 허위유포는 양아치 짓’이라 매도했다. ‘양아치’란 말에 TV 속 얼굴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양아치란 천박하고 못된 짓을 일삼는 사람을 뜻하는 속된 말, 상스러운 욕설이다. 중죄인이어도 사람을 남루로 나달대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말하는 이의 품격이 들여다보였다.

사람을 볼 때, 거죽만 보면 헷갈린다. 말에 그 사람의 모든 게 보인다. 말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고, 지나온 세월을 비추는 거울이다.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니다. 제발 바른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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