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인가 소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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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철, 제주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논설위원

갓난아이는 무엇이든지 입에 넣는다. 자기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도 자기의 일이나 주장밖에 모른다. 아이처럼 좁은 시야에 가려 금방 일어나게 될 위험이나 비난을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주제에 고집은 세고 갑질까지 한다. 아는 것이 그것뿐이기 때문에 그것이 무너지면 전부가 무너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무리가 선생이라면, 그는 평생 단지 몇 과목만을 개설하여 강의한다. 작년에도 그 말을 했으며, 올해도 내년에도 같은 말을 할 것이다. 대화가 아니다 일방적인 주입이다. 그러다 학생이 대화를 시도하여 질문하면 “날 시험하려 드느냐”고 화를 낸다. 오직 그것만을 알고 있어서, 체면을 구기게 되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화를 내는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이라고 예외이겠는가? 자기가 알고 자기가 정한 원칙만이 옳다. 남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 말은 소신이라고 하지만 그냥 고집이다.

어느 곳에 강의하러 갔다가 한 사람을 만났다. 이것저것 아는 척하더니, 모교수를 물으며, 건방을 떤다. 마치 “당신네들 교수가 다 그 모양이지, 실력도 없는 주제에 꼴에 교수랍시고…”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안다. 해마다 바뀌는 어린 학생들 앞에서는 작년에 했던 말을 올해도 하면서 대학자라도 되는 듯 건방을 떨지만, 대학원생들만 되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악한 놈 옆에 있다가 함께 벼락 맞는다고, 덜떨어진 자 옆에 있다가 함께 못난 꼴이 되기 싫었다. 강의가 시작되자 애초의 계획과는 달리 수준을 높이었더니, 이번에는 그가 몹시 당황하여 다소곳해지는 눈치였다.

사실 대부분의 많은 교수들은 학생의 전공이나 학생의 요구를 경청하고 언제라도 그들의 요구를 따라 변신을 시도한다.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발전시킨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마 그런 분들은 그렇게 쌓아 가다가 어느 날에 이르러 성숙되면, 어느덧 수 가지에 정통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스스로도 놀라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만이 한가지에도 깊이 정통할 수 있다.

이것이 늙은 말의 지혜이다.

힘차게 뛰어야 좋은 말이거늘, 늙고 병들어 있으니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쓸모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길을 잃고 헤맬 때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은 경험 많은 늙은 말이다.

그렇다고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누구나 이를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다.

각자의 분야에서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만이 이를 수 있다.

교육하는 사람은 교육의 현장에서 자기 전공을, 정치하는 사람은 정치판에서 정치에 필요한 이것저것을 잘 배우고 익혀야 하거늘, 숱한 세월을 윗사람 눈치나 보고, 이런 저런 시위 판을 이끌며 선동만 하면서 자기 발전에는 눈감은 자라면 결코 이를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다.

물론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스스로 부족한 것을 알고 지혜로운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사람은 완전할 수 없다.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 그래서 잘못한 것이 잘못이 아니고, 잘못을 고치지 않는 것이 잘못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렇지만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어찌 그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겠는가? 나와 같은 필부(匹夫)도 아는 일을 그들은 모른다. 그래서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오직 자기가 아는 것만을 향해 나아가면서 그것을 소신이라고 착각한다. 그런 자들을 그저 쳐다만 보아야 하는 현실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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