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선친 교육정신과 향토애 기리기 위해 현대식 도서관 기증
(71)선친 교육정신과 향토애 기리기 위해 현대식 도서관 기증
  • 고동수 기자
  • 승인 2019.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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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중, 6·25 육군본부 정보참모·대창기업 운영…김용하 지사 차남
김광배, 오사카 공산당 항일 활동
김광숙, 지극한 효행으로 큰 귀감
김광종①, 명월진 만호
김광종②, 전 재산 투자해 화순리 수로 개척
제주에서 처음 현대식으로 지어진 공공도서관인 우당도서관의 모습. 제4대 제주도지사를 지낸 우당愚堂 김용하金容河의 교육 정신과 향토애를 기리기 위해 김관중·김우중 등 5형제가 선친을 기념해 설립, 우당도서관을 제주시에 기증했다.
제주에서 처음 현대식으로 지어진 공공도서관인 우당도서관의 모습. 제4대 제주도지사를 지낸 우당愚堂 김용하金容河의 교육 정신과 향토애를 기리기 위해 김관중·김우중 등 5형제가 선친을 기념해 설립, 우당도서관을 제주시에 기증했다.

김관중金貫中1930(일제강점기)~2007, 육군본부 정보참모, 육군준장으로 전역, 본관 광산, 문공文簡공 대교동大橋洞. 문교부장관 김덕중金德中대우大宇그룹을 창업한 김우중金宇中의 친형이다.

4대 제주도지사 김용하金容河와 전인환全仁桓여사의 차남으로 대구에서 출생했다.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졸업, L.A. 대학을 졸업했다.

김관중은 6·25 당시 참전한 용사로서 육군본부 정보참모이다.

그는 제주에서 대창기업大昌企業을 운영, ‘대우그룹에서 착수한 고향 하귀리의 우당회관 건립과 사라봉의 우당愚堂도서관 건립에 헌신한 후 각각 향리와 제주도에 기증했다.

우당愚堂은 선친의 아호이다. 1984년 개관한 우당도서관은 제주 지역 신문에 보도된 지역 현안 기사와 칼럼 등을 모은 스크랩북들을 문헌 보관실에 소장하고 있다.

제주인의 항일사’, ‘제주 해녀’, ‘제주의 오름’, ‘제주의 나무’, ‘제주의 물100여 가지나 되는 연대별 이슈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어서 사료로서 가치를 지닌다.

제주에서 처음 현대식으로 지어진 공공도서관인 우당도서관은 제주 시내의 대표적인 산책 코스인 사라봉 인근에 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 5형제가 제4대 제주도지사를 지낸 아버지 우당偶堂 김용하의 교육 정신과 향토애를 기리기 위해 도서관을 세우고, 부친의 호를 도서관 이름으로 삼아 제주시에 기증한 것이다.

우당도서관은 지하 2, 지상 3(연면적 6796) 규모에 23만여 권의 장서를 갖추고 있다.

 

김관중이 1984년에 개관한 우당도서관에 기증한 서귀포 해안을 배경으로 한 한국화.
김관중이 1984년에 개관한 우당도서관에 기증한 서귀포 해안을 배경으로 한 한국화.

김광배金光培1907(융희 1)~?, 일본 오사카에서 공산당의 항일 활동. 광복 후에 일본 국적 취득, 본관은 경주, 김희정金熙鼎7남으로 산북 조천리에서 태어났다.

김광배는 조천공립보통학교를 중퇴하고 19247월 일본으로 건너갔고 19326월 효고현<兵庫縣> 서부지구에서 활동했다.

일본공산당 당원 기다가오루<北薰>의 권유로 입당, 일본 공산당 지방위원회 고베시위원회 행동대 책임자로 항일 활동을 했다.

그는 시즈오카현<靜岡縣>에서 19334월 피검되고 동 512일 기소되었다.

19331024일 고베<神戶>지방재판소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고, 1942년 일본인의 양자로 입양돼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김광숙金光淑1796(정조20)~1869(고종6), 무신. 본관 광산, 제주시 오라리<오라위>에서 참봉 김진용金晋鎔6세손이며 김상빈金尙斌의 아들이다.

1836(헌종2) 무과에 급제, 부해浮海 안병택安秉宅이 그의 행장을 지었다.

관직이 동지중추부사에 이르고 평소 덕행과 재기才器가 넘쳤으며 또 효행으로 널리 알려졌다.

본시 성품이 지극히 효행스러워 부친이 남의 중상모략에 의해 죽은지라 그는 평생 분통을 이기지 못해 남과 더불어 웃어대지 않았다.

순조 때에 북을 치어 신원을 요청하고 또 어머니께 대해서도 지극히 효도로 일관하니 주변에서 어사에게 효행을 추천하자 1860(철종11)에 그 집안에 요역徭役과 세금을 면제해 주었다.

 

서귀포시 안덕면 황개천에 있는 김광종金光宗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서귀포시 안덕면 황개천에 있는 김광종金光宗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김광종金光宗①:1736(영조12)~1793(정조17), 무신. 본관은 광산, 전적 김계흥金継興의 손이며 부호군 김복태金福泰의 장남이다.

그는 1775(영조51) 홍수관洪受寬, 원국필元國弼, 임춘택林春澤 62명과 함께 무과에 급제하고 1784(정조8) 823일 이성오李聖五의 후임으로 명월진 만호萬戶에 이르렀으며 178512월 그만 두었다.

김광종金光宗②:1792(정조16)~1879(고종12), 수로水路 개척자. 본관 김해 우후虞侯공파, 한경면 저지리<-모루>에서 태어나 대정향교를 출입했다.

수로 유적遺蹟은 안덕면 화순리<-> 황개黃介川(창고천 지류) 냇가에 있다.

도막은-를 따라 도채비-빌레남쪽부터 황개천 갯가까지 무려 5만여 평이 논으로 변했다.

이 일대를 -라 하고, 김광종의 개척에 의한 인공적人工的인 논이었다.

김광종은 제주목 관내 사람으로 대정大靜지방 -의 수로 개척공사를 1832(순조32) 3월에 착수해 1841(헌종7) 9월에 완공시켰다.

이 공사에는 당시 엄청난 비용이 들었는데 그 비용은 본인의 재력을 털어 마련했다.

공사에 앞서 그는 양태凉太(갓 양태) 장사를 하며 돈이 되는대로 여러 곳에 밭들을 사두었다. 또한 육지를 돌아다니며 제주도에서도 육지陸地에서처럼 논농사를 지을 수 없을까?”라고 느꼈고, 논농사에는 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했다.

결국 김광종은 화순리<-> 황개천 냇가에 사 둔 땅도 있어서 수로 공사를 계획하게 된다.

황개천 위쪽의 도막은-로부터 도채비-빌레사이의 석벽石壁에 수로를 뚫어 물을 대면 넓은 밭들을 모두 논으로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수로가 완성되면 물세를 받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리하여 김광종은 1832(순조 32) 3월에 세오래-’(화순리 423번지의 밭)을 세내어 움막을 지어 살면서 자신의 전 재산을 투자해 수로를 굴착하는 대역사大役事를 시작했다.

도막은-에서 도채비-빌레북단까지는 절벽 바로 밑을 파내어 수로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채비-빌레절벽에 이르러 20m 가량 굴을 파는 작업이 난공사였다.

1841(헌종7) 9월에 총연장 1100m(비석에는 670m)에 이르는 수로를 10년 만에 완공했다. 또한 그의 은덕으로 인해 이 지역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많은 혜택을 누려왔다.

답회畓會 회원들은 제일祭日을 정하고 도채비-빌레동산에서 야제를 봉행했다.

19385월은 화순리 답회와 김광종 후손들의 공동 명의로 이 도채비-빌레동산에 공덕비를 세웠다.

비석에는 산을 뚫고 물을 끌어 한라산 서쪽에 논농사를 시작하게 했는데 자신의 재산을 많이 들여 후세를 넉넉하게 했다. 우리에게 향기로운 쌀을 먹게 한 것은 공의 덕행의 근본에 기인했으니 그 공이 소부召父에 비길 만해 해마다 전조田祖로 삼아 제사를 지낸다.”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