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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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음식점 안이 시끌벅적하다. 새해를 맞아 신년회를 갖는 단체며 모임, 관광객들로 빈자리가 없다. 저녁 시간이라 거나하게 취한 취객들의 흥까지 섞여 여간 소란스러운 게 아니다. 좀체 아늑하고 분위기 있는 식사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어딜 가나 대중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말과 말이 실타래처럼 엉켜 상대의 말소리를 알아듣기 어렵다. 최고의 교통수단이라는 공항에서조차 예외가 아니다. 각 항공사의 안내 방송과 승객들이 너나없이 쏟아내는 말들이 시끄러운 소음으로 변하곤 한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짜증이 나고 질리게 하는 게 화난 사람의 목청이다. 원래 격하고 열정이 많은 민족성이, 쉽게 부아를 다스리지 못하고 걸핏하면 얼굴을 붉히며 큰 소리를 낸다. 화를 참는 것도 일종의 수행일 텐데, 언쟁을 벌이다 불행한 사태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세를 낮추는 쪽도 있어야 하는데, 현실이 팍팍해 욕구불만이 쌓여 쉽게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가.

감성을 촉촉이 적시며 빠져들게 하는 아름다운 음악은 영혼을 맑게 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도무지 흉내 낼 수 없는 게 자연의 소리다. 조그마한 몸짓으로 지저귀는 새소리, 자갈돌을 굴리며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 눈 내리는 밤 나목의 빈 가지를 흔들고 지나는 바람이 우는 소리. 조용히 귀를 기울여 듣노라면 고단한 심신이 고요히 잦아든다.

목소리 높여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보이고 싶은 욕심에서다. 한때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지위를 이용해 목소리가 높았던 시절이 있었다. 주차 시비나 사소한 일로 이웃끼리 서로 옳다고 우기는 모습을 볼 때면, 여유를 갖고 대화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싸움과 설득에도 지혜가 필요하다. 낮은 목소리, 곧 전략이다. 조곤조곤 이해를 끌어내는 화술이 바로 낮은 목소리에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말에도 품위가 있어 그 사람의 얼굴이요, 인품을 엿볼 수 있는 잣대다.

언젠가 대형마트에서 보았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장난감을 사 달라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세 살가량의 사내아이. 그냥 지나치려다 눈길을 끌어 지켜보게 됐다. 엄마는 아이의 눈높이로 무릎을 접고, 두 손을 맞잡아 조용히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조금 후,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밝은 모습으로 돌아섰다. 전리품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자애로운 엄마의 행동에 미소가 번졌다.

흔히 정치 세계에서 보게 되는 풍경이다. 선거철이면 다투어 목소리 높여 공약을 내놓는다. 실천 가능한 일인지. 알맹이 없이 내용만 그럴듯하게 포장해 놓고 당선이 된 후, 나 몰라라 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건 유권자의 몫이 아닌가.

정부 정책도 마찬가지다. 국민과 정부가 톱니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데, 선심 정책에 휘둘려 갈팡질팡하는 모습에 실망이 크다. 국민들의 마음을 읽을 줄 모르는, 아니 무시하는 소통 부재가 답답한 정부로 만들고 있다. 국민들도 옳은 일에는 목소리를 돋워 응원을, 지도자들은 국민에게 진정성을 갖고 낮은 목소리로 이해와 설득해 통해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자세가 필요하다. 반대 측 의견에도 정중히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성숙한 자세가 절실하다.

새해에는 나랏일이나 이웃끼리 낮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정담을 나누듯 따뜻한 사회가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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