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0년의 풍파 견디고 제주 풍토와 美 그대로 보존
(3)120년의 풍파 견디고 제주 풍토와 美 그대로 보존
  • 김정은 기자
  • 승인 201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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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전후로 지어진 한옥 가옥
해미현감 김응전 이후 7대손 거주
넓은 대지·마당에 5채 건물 특징
재질감·공간구성 등 독특한 양식
제주도 민속자료 등재 가치 충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518번지에 위치한 120년 정도 된 가옥. 故 김순환씨의 가옥으로 한식 기와 형태에 제주의 풍토를 반영한 독특한 양식이 특징이다.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518번지에 위치한 120년 정도 된 가옥. 故 김순환씨의 가옥으로 한식 기와 형태에 제주의 풍토를 반영한 독특한 양식이 특징이다.

제주지역에는 한식 기와집 형태가 많지 않았다.

기와의 재료 수집과 제조기술상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제주가 비바람이 많은 자연환경으로 와가(瓦家)는 비바람에 약하기 때문에 건축물로 제작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성안과 화북·신촌·조천에 분포돼 있었다. 예전에는 현청이 있던 정의현과 대정현에도 몇 채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것도 몇 채 되지 않는다.

제주지역은 바람이 많이 부는데다 풍속이 강해 기와가 다른 지역과는 다른 특징을 갖는다.

처마끝과 용마루 주변은 회()몰탈로 단단히 접착해 육지의 와가 지붕보다 흰색이 강하게 나타나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조선시대 김정이 제주로 유배와 생활하면서 체험한 제주도의 풍토와 생활모습을 기록한 풍토록(風土錄)’에 따르면 와가형태의 가옥은 매우 적고 양현(兩縣)의 관사와 같이 새()를 덮었다고 돼 있다. 제주지역의 초가(草家)와는 달리 희소한 전통주택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도 민속자료 제4호로 지정된 와가는 총 6가옥으로 김석윤 가옥(제주시 화북11640) 김희복 가옥(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473-1) 김국배 가옥(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523) 황인관 가옥(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733) 조규창 가옥(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2462) 조규희 가옥(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2303)이다.

제주 초가에 비해 많지 않은 주택으로 재질감과 규모, 공간 구성 등에 있어서 육지의 와가와는 다른 방식의 건축양식을 지니고 있어 문화적 가치를 갖고 있다.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518번지에 위치한 김순환씨(金淳煥·전 제주대학교 농과대학 교수)의 가옥 역시 이런 독특한 문화적 특색이 그대로 묻어난 채 잘 보존되고 있지만 아직 민속자료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않고 있다.

 

故 김순환씨 가옥은 대지가 매우 넓어 북서쪽 부분 마당은 작은 밭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넓다.
故 김순환씨 가옥은 대지가 매우 넓어 북서쪽 부분 마당은 작은 밭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넓다.

120년 된 기와

1900년 전후에 지어진 건축물로 120년 정도 된 오래된 가옥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이 집은 김순환씨 부인이 거주하고 있다. 그의 기억에 따르면 7대손이 이 가옥에 살았다.

처음 집을 지은 분은 고종 18(1881)에 충청남도에서 해미현감(海美縣監)을 지낸 김응전씨(金膺銓).

1898년 방성칠의 변란으로 김응전씨는 제주로 유배와 이 가옥을 세우게 된 것이다.

집터에 주위 지형(도로)보다 낮은 곳에 돌담을 두르고 건물이 들어섰다.

대지가 매우 넓은편으로 북서쪽 부분은 작은 밭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마당이 넓다.

안거리는 4칸으로 이뤄져 약 80(24), 밖거리는 3칸으로 이뤄져 약 33(10)이며 동쪽 이문거리, 서쪽 별채까지 자형으로 배치됐다.

초가와 마찬가지로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거리와 밖거리가 대칭을 이루는 형태다.

이문거리 북쪽으로도 별채가 있어 건물은 모두 5채가 한 번지 안에 있다.

별채 2건물은 기와집이 아닌 초가였으나 지금은 지붕을 바꿨다.

또 남쪽에 북향으로 앉은 안거리는 정면 4칸이며 기둥 부분에 돌벽을 붙였다.

퇴에는 유리문을 달았다. 밖거리에도 유리문을 달았는데 동쪽에는 창이 있다.

현재는 고장난 문을 새로 달면서 외관상 약간의 변형은 있지만 안채와 바깥채 건물 구조는 축조 때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렸고, 기와의 틈은 회로 마감했다.

안거리 뒤에는 동쪽과 서쪽을 돌담으로 막아 안뒤’(제주 전통가옥에서 안거리의 뒤에 있는 뜰이나 마당)를 만들었는데 그 안에 커다란 소철이 자라고 있다.

밖거리에도 안뒤가 마련돼 있다.

서쪽 빈 공간에는 눌굽을 마련했던 곳으로 보이는데 옛기와들이 쌓여 있다.

이곳은 민속자료나 문화유산으로 등록될 만한 가치가 높지만 김순환씨 부인이 자식들의 의견을 참조해 아직은 등록 신청을 해놓지 않은 상태다.

그는 대대손손 내려온 이 건물을 지키는 게 내 의무라며 민속자료로 등록은 나중 일이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나이가 있는 만큼 건물에 대한 기록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한윤순 여사가 만든 우물이 복원됐다.
최근 한윤순 여사가 만든 우물이 복원됐다.

한옥 가옥 옆 복원된 우물

김순환씨 가옥 서쪽 문밖에는 김순환씨의 조모 한윤순 여사(1870~1958)가 개인 재산을 들여 만든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1930년대 개인 소유의 토지에 우물을 조성해 모든 마을 사람들이 이 우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한윤순 여사는 사람이 남에게 꼭 주어야 할 것 3가지로 물, , 길을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웃 사람들이 모두 이 우물을 이용했지만 1969년 마을에 상수도가 보급되면서 우물의 가치가 적어지면서 그대로 방치됐다.

그후 유지관리의 문제가 생기며 우물을 매립됐고 또한 공덕비도 우물 근처에 묻혔다고 한다.

최근 조천읍 조천리는 한윤순 여사를 기리기 위해 우물 복원 사업을 완료했다. 마을 주민들이 옛것을 찾고자 하는 의욕으로 우물 원형을 복원하고 공덕비를 발굴해 다시 세웠다.

 

김순환씨의 조모 故 한윤순 여사 공덕비.
김순환씨의 조모 故 한윤순 여사 공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