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거리
관계의 거리
  • 제주신보
  • 승인 2019.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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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마음이 급하다. 그런다고 될 일이 아닌 줄 알면서도 입 안에 침까지 마른다. 이 시간대 막히기는 어디든 비슷할 게다. 언제부터인지 거리를 가늠하면 소요되는 시간이 계산되었는데 이젠 그도 안 통한다.

도로마다 차가 넘쳐 몇 번의 신호를 받고서야 움직이는 듯했다. 웬걸 막힌다 싶어 잽싸게 옆 차선으로 눈치 보며 끼어들었다. 막힘은 다를 바 없었고, 공연히 즐비하게 서 있는 약간의 차간 거리에 양심만 판 꼴이 되어 버렸다. 움직임이 없어 조급함만 더 했다.

그런데 한쪽 차선은 완전히 막히고 앞에 선 차들이 차선을 바꾸느라 방향등을 죄다 깜빡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차의 행렬에 밀리듯이 간 그 지점 인근에 접촉사고가 나서 차들이 지그재그로 엉켜 있었다. 행여 끼어들기라도 할까 봐 너나없이 앞차 움직이는 만큼씩 같이 이동하다 보니 차간 거리를 놓쳤나 보다.

서둘렀다. 충분히 시간을 갖고 출발했지만 약속시간이 빠듯하다.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좀 늦을 것 같다’ 전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하다. 긴장했던 탓에 마른입도 다셨고 호흡도 크게 한 후, 이어 뒤의 차를 백미러로 쳐다보는 여유도 가지며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왁자해야 할 분위기인데 어째 공기 흐름이 싸하다. 자리를 찾아 앉고 심상찮은 흐름에 왜 그러는지 묻자, 옆 자리 앉은 회원이 눈짓으로 조용하라는 신호를 준다. 궁금증은 더욱 증폭되었고 누구 하나 눈 맞추는 이도 없다. 정황은 잘 모르지만 아마 누가 누구 편을 들거나 거든다는 것으로 비칠까 봐 입조심을 하는 낌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서 무겁던 분위기는 그제야 무게를 덜어냈고 이야기 내용은 여기서 이 말, 저기서 저 말이 삐죽삐죽 새어 나왔다. 그것들을 주워 꿰니 흐름을 대충 알 것 같았다. 무엇보다 문제의 중심에 있는 두 사람은 여기 구성원 중 제일 친하다는 사람들 아닌가.

어디서 어떻게 이야기가 꼬였는지 모르지만 그 말을 하려 한 것이 아니고, 하다 보니 굳이 안했으면 좋았을 말을, 말끝에 나와 감정선을 건드린 것이다. 말하는 이는 별것도 아닐 수 있지만 듣는 입장에선 충분히 거슬리거나 상처가 될 수도 있었다. 식사 후 시시비비를 가려야 될 것 같지 않아 짧은 인사로 삼삼오오 헤어져 돌아왔다.

관계에서 오는 거리라는 것을 생각했다. 너무 친한 탓에, 혹은 너무 가까운 터에 서로를 잘 알고, 또 이해할 것이라 단정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마음 상하고 만 것이다. 사람 관계에서 내 맘이 너 맘 같을 때야 얼마나 좋을까만, 너 맘이 내 맘 같지 않았을 때 빚어지는 감정의 뒤틀림, 서로 간에 상처가 되는 것이다. 마음이든 물질이든 내 것을 타인에게 줄때는 내 맘일 수 있지만, 그 반대인 경우 문제는 확연히 달라지고 그에 따라 결과도 달라진다.

아까 이동하며 본 접촉 사고나 모임 장소에서 어긋나며 엉킨 감정들이 묘하게 ‘관계의 거리’를 생각하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 안전거리는 얼마간의 간격과 또 어느 만큼의 정(情)의 크기를 유지해야 하는 걸까. 멀어서 관계가 소원함도, 너무 가까움으로 인하여 서로에게 무례함도 없는 적정 거리는 어느 정도 일까. 원하면 마음의 곁가지를 솎고, 쳐 낼 수 있는 평정심을 주머니에서 꺼내 쓸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감정도, 말도 관계에서 조율과 소통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