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민주주의의 새로운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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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수, 리쓰메이칸대학 국제관계학부 특임교수/논설위원

보도에 따르면 제주도교육청이 전국에 앞서 숙의민주주의를 교육 행정에 도입하는 ‘제주교육공론화위원회’를 오는 3월부터 본격 가동한다고 한다. 이석문 교육감도 올해 신년사에서 교육공론화위원회를운영해서 ‘숙의민주주의의 새 장’을 열겠다는 소신을 밝혔다.

지난해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이하 신고리위원회)’가 숙의민주주의의 최초의 성공 사례로 이목을 끎에 따라 숙의민주주의를 중요한 정책 결정의 근거로 삼으려는 시도가 전국에 퍼지고 있다. 한국 사회는 안보의 논리가 인권이나 민주주의의 논리를 압도한 치열한 남북 대치상황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세계에 자랑할 만한 민주사회를 이룩해 왔다. 민주화의 힘의 원천은 4·19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그리고 촛불혁명 등 거리에서의 학생·시민이 자발적인 항의 행동이었다. 숙의민주주의의 도입은 이렇듯 시민 스스로가 성취한 한국 민주주의의 질을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숙의민주주의는 하버마스(J. Haberman) 등이 제창한 토의 이론에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그 논리의 관건은 어떤 사회문제를 놓고 그 해결책이나 결론이 어느 만큼 옳은 것인지의 판단 기준을 이를 위해 얼마나 양질의 토의가 행해졌는가 라는 점에서 구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숙의민주주의의 발상이 현대사회의 실제 공론 형성의 방식으로서 주목받게 된 것은 1988년에 피슈킨(James S. Fishkin) 등에 의해 숙의형 여론조사(Deliberative Opinion Poll)의 수법이 개발된 것에 비롯된다. 1990년대 이후에는 인터넷 등 소통 수단의 발달과도 더불어 숙의형 여론조사나 의사결정이 미국·영국·호주 등 영어권 나라들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시도되기 시작한다. 일본에서도 기초자치단체의 자문회의 수준이나마, 각종의 ‘시민토의회’가 조직되었다. 외국인의 시정(市政) 참여를 위한 가와사키시(川崎市) 외국인시민대표자회의(1996년 설립)도 그러한 숙의민주주의의 실험으로 볼 수 있다.

한국에서의 숙의민주주의의 실천과 그 성공 여부는 촛불혁명을 이어받아 철저한 민주주의의 심화를표방하는 문재인 정권의 성공 여부를 가리는 시금석이기도 하다. ‘신고리위원회’를 시작으로 정부 부처는 물론,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각종 공론화위원회를 정책 결정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보도되고 있다. 인천에서는 상설기관으로서의 공론화위원회가 오는 2월에 출범한다.

하지만 이렇게 활성화된 숙의민주주의의 시도들이 모두 다 기대된 만큼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고리위원회’에 대해서도 위원회가 원전의 축소까지 권고한 것은 ‘월권’이라는 비판이 있는 한편, 원전 수출 문제를 숙의 대상에서 제외한 것을 비난하는 소리도 만만치않다. 교육부의 ‘대입제도개편공론화위원회’에 관해서도 공론화 과정에 문제가 있고 결론도 모호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제주도에서도 원희룡 도지사가 스스로 설치한 영리병원 ‘공론화위원회’의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지사의 결단은 숙의민주주의의 한국에서의 성숙을 생각해볼 때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숙의민주주의의 실천은 소박한 형태로서는 역사적으로 여러 지역, 여러 형태로 시도됐다. 하버마스가 18·19세기의 프랑스의 살롱이나 영국의 커피숍에서 찾은 공공권(Public sphere)이 그러한 것이었고, 20세기 초의 미국에는 타운미팅이나 오픈포럼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해방직후 각지에서 조직된 인민위원회 그리고 1980년 5월 광주도청 앞 광장에서의 범시민대회가 바로 그러한 숙의의 공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숙의민주주의가 번성과 퇴색을 되풀이해 왔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민주당정권(2009~2012) 때에는 ‘새로운 공공’이 강조되어 중앙·지방의 정책 형성에 여러 형태의 숙의가 시도됐지만, 아베정권하에서의 우경화와 더불어 사회는 분단되어 불관용과 일방적인 주장들로 넘치게 된다.

한국에서의 숙의민주주의가 한때의 유행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제주도교육공론화위원회’가 한국사회에서 숙의민주주의가 뿌리내리고, 숙의 문화가 성숙해 가는 데 선도자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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