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한 시대 풍미한 문화예술 공간…옛 시절 추억 서려있다
(4)한 시대 풍미한 문화예술 공간…옛 시절 추억 서려있다
  • 홍의석 기자
  • 승인 2019.0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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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완공 최대 규모 영화관 
신식 영사기·대규모 좌석 갖춰
배 앞머리·물결 모양의 지붕 등
바다의 낭만적 모습 설계 반영
“원도심 랜드마크로 손색 없어”
1965년 완공된 제주시 동문로 동문시장주식회사 건물. 백화점과 영화관으로 설계된 건물로 신축 당시 도내 상업시설로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1965년 완공된 제주시 동문로 동문시장주식회사 건물. 백화점과 영화관으로 설계된 건물로 신축 당시 도내 상업시설로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텔레비전(TV)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 동양극장은 당시 제주도민에게 최고의 공간이었다.

복합적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제주 지역의 극장은 시대와 삶을 소통시켜 주는 대중문화 예술의 공간이자 도민들의 대중문화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주는 탈출구였다.

일상의 근심을 잠시 잊고 새로운 세상을 접할 수 있는 통로가 극장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동양극장은 이제 건물만 남아 추억과 함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주 최초의 복합문화공간

동문시장주식회사는 제주 최초의 근대 상업 건축물로 꼽히고 있다.

1963년 첫 삽을 뜬 후 2년 만인 1965년 완공됐다.

원래는 백화점과 영화관(동양극장)으로 설계된 건물로 신축 당시 도내 상업시설로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건물면적은 3690(1100)로 본관은 2층이지만 영화관 객석을 포함하면 지상 4층 규모다.

이 건물 중앙에는 김영관 지사의 기증 현판이 남아 있다.

현판에는 착공일 및 기공일과 함께 도지사가 아닌 해군소장(海軍少將)’으로 새겨져 있다.

극장문화가 보편화돼 있던 시대가 아니었기에 35신식 영사기 두 대를 설치하고 대규모 좌석을 갖춘 동양극장은 개관 당시 지역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제주 동양극장 설계는 제주 출신 건축가 고() 김한섭씨(1920~1990)가 맡았다.

1세대 현대 건축가로 꼽히는 그는 화북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송정공업중학교(현 목포공고)와 일본의 대학에서 건축 전문교육을 받았다.

그는 전남대 건축과 교수를 시작으로 홍익대와 중앙대 교수를 역임했다.

() 김한섭씨는 고향인 제주에서 처음 설계한 이 건축물에 모더니즘 양식과 낭만적 성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큰 지붕은 역동적인 곡선으로 배 앞머리를 닮았다.

지붕은 물결 모양을 반복했다. 먼 곳에서 보면 이 건물은 배를 닮은 모습을 띠고 있다.

극장 출입구 상부의 원호형 아치는 파도를 떠올리게 하고 천막을 쳐놓은 것처럼 돌출된 객석 부분은 바람을 받는 돛대 같다.

또 상부 영사실은 노련한 선장이 키를 잡고 바다를 응시하는 조타실을 구현한 듯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관과 시장 점포가 이어지는 부분에는 자 문양의 뚫린 블록 쌓기로 이질적인 두 건물을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건축학계에선 계단 창문까지 여객선의 원형창을 도입하는 등 제주의 바다와 산지항을 모티브로 낭만적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건축가들이 원도심의 당당한 랜드마크로 지금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라고 호평했다.

 

분주한 사람들과 영화 간판이 눈에 띄는 1970년대 동양극장의 모습. 당시 영화관은 제주도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쓰이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분주한 사람들과 영화 간판이 눈에 띄는 1970년대 동양극장의 모습. 당시 영화관은 제주도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쓰이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문화와 낭만의 중심지

당시 칠성로는 문인·묵객들의 휴식공간으로 애용됐던 다방들이 모여 있었다.

또 제주극장부터 제일극장, 중앙극장, 동양극장 등의 극장도 자리하면서 자연스레 문화와 낭만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동양극장은 무대와 객석을 부채꼴 모양으로 만들어 당시 직사각형 모양이던 다른 극장들과 차별화를 추구했다.

극장은 2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은 출입, 매표를 위한 공간으로 두고 2층에서만 영화를 보게 했다.

동양극장의 규모는 1200석으로 다른 극장보다 규모가 컸다.

당시 제주극장이 475, 대정 상설극장이 350, 삼일극장이 756석이었다.

관덕로·중앙로·동문로를 잇는 상가와 시장은 제주의 경제 중심지로 불릴 만큼 유동인구가 많았다.

먹을거리가 유명한 것은 물론 잡화, 미곡, 가구점을 운영하는 상인들과 구매하려는 소비자들로 넘쳤던 곳이다.

영화관은 제주도민들의 집회 장소이자 공연장으로 쓰이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렸다. 한 시절을 풍미했던 영화관을 원도심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제주도민의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동양극장은 시네하우스라는 이름으로 2000년대 초반까지 운영돼 왔지만 지금은 문을 닫은 상태로 이제는 오랜 기억에만 남아있다.

현재 메가박스제주점(옛 아카데미)이 원도심의 유일한 영화관이다.

도시개발로 주택단지가 들어선 제주시 아라·노형 등에 영화관이 자리잡고 있다.

동문시장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도내 최대의 쇼핑타운었지만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수십년을 지내온 상인들도 변화를 실감한다.

기억이 스민 이 공간들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를 다시 한 번 돌아보기 위해 원도심에서 예술인들의 공간이 하나둘 문을 열며 문화재생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그 결과를 장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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