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겨야 할 졸업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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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학생이 배우면서 규정에 따라 소정의 교과과정을 마치는 걸 졸업이라 하지요. 통과의례이긴 하나 나이 들어 성인의례를 치르는 것하고는 다른 데가 있습니다. 어른이 되는 것은 옛날 상투를 틀 듯 나이만 먹으면 되지만 졸업은 다르거든요. 그것은 일종의 학교와의 계약을 청산하는 일입니다.

18세인데도 학교를 다니면 18세 미만 관람 불가 영화를 보지 못하는 수가 있잖아요. 수능이 끝난 뒤엔 빨리 이 청산 작업이 이뤄지는 게 절대 유리합니다. 청산의 증명은 말할 것 없이 ‘졸업장’입니다. 청소년보호법상 나이가 성년이 돼도 고교생이면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뿐 아니라 심야에 PC방에도 입장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요즘 고교에서 2월이 아닌 1월 초·중순에 졸업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데는 그만한 시절 흐름이 있는 겁니다.

끝냈다고 졸업이 아니지요. 학위를 주지 않고 교육과정을 마쳤을 때는 졸업이라 하지 않습니다. ‘수료’입니다. 정식 교육과정이 아닌 유치원에선 졸업장을 주지 않고 수료증을 주잖아요. 대학이나 대학원 과정을 다 마쳤는데 학위를 딸 수 있는 요건에 이르지 못하면 그도 수료로 처리됩니다. 대학은 학기제라 겨울(2월)과 여름(8월)으로 나눠 졸업식을 합니다. 8월은 한창 코스모스가 피는 가을에 잇닿아 있다고 코스모스졸업이라 부릅니다.

교직에 여러 해 있으면서 적잖은 졸업식을 경험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딱 한 번 졸업생을 내보냈던 일이 기억에 남아 있어요. 졸업식전에서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로 시작되는 졸업식 노래가 졸업생이 부르던 2절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에 이르면 목이 메어 울음바다가 되곤 했지요. 식이 끝나도 졸업생들의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았어요. 아이들을 달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졸업식 노래도 바뀌었고 눈물바다가 되는 일도 옛말이 된 지 오래입니다.

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겼더니, 몇 년 전엔 졸업식 뒤에 밀가루를 뿌리고 뒤집어쓰고 교복을 찢고 단추를 끊어 내던지고. 퇴폐적 분위기로 흘러 그걸 단속하느라 혼쭐이 났습니다. 학교나 시민회관 등 졸업식을 치르고 난 장소는 밀가루로 난장판이 돼 쓸고 걸레질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했지요.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이제 없어졌을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구속으로부터의 일탈이거나 심리적 해방감의 표출, 일련의 성장통이거나 아마 그런 걸 텝니다. 그래도 학교를 졸업하는 데 웬 불만과 울분이 터져 나왔던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요즘 학생들 의식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진 것 같아 퍽 흐뭇한 마음이 드는군요. 일제강점기엔 창씨개명을 거부한 학생은 졸업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빛나는 졸업장’인 게 맞습니다.

졸업이라고 울먹일 일이 아닙니다. 밀가루를 뿌리는 것처럼 무모한 일도 없고요. 졸업은 역사성을 지닙니다. 고교까지 졸업은 대학으로 가는 새로운 시작의 순간이고, 대학교 이후나 고교를 졸업해 취업할 이에게 졸업은 ‘사회’라는 이름의 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그 순간이기도 합니다.

졸업의 의미를 되새겨야 해요. 졸업은 도착점이 아닌 출발점입니다. 상급학교로 진학하거나 사회로 나가거나 간에 미래를 정시해야만 합니다. 꿈이 있어야지요. 시작은 미미해도 끝이 창대하리라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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