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교복, 옷이냐 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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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우리나라에서 처음 교복이 등장한 건 1886년 이화학당에서다. 4명의 학생에게 붉은 목면으로 만든 치마 저고리를 만들어준 게 효시였다. 남학생의 경우는 1898년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배재학당에서 학생들에게 일본교복과 비슷한 도포차림의 당복을 입혔다.

일제 땐 전시체제 강화로 여학생은 ‘몸빼’라는 작업복 바지를, 남학생은 국방색 교복을 입었다. 광복 후 일정한 형태로 정착되던 교복은 1980년대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자율화 조치가 단행됐다.

하지만 ‘사복이 위화감을 조성한다’ 등 반대 여론이 확산되며 1986년 교복 착용은 학교장 재량에 맡겨졌고 대부분 중·고교에서 교복이 부활했다. 지금의 교복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디자인과 색깔이 뛰어나다.

▲당초 교복은 면학의식을 길러주고 단체생활을 원활히 하기 위해 도입됐다고 한다. 교복 자율화 조치 이전만 해도 빳빳한 스탠드칼라에 단정하게 채워진 호크, 가지런한 단추, 잘 다려 입은 바지는 모범생 교복의 전형이었다.

가끔은 모자를 삐뚤어지게 쓰고, 운동화 뒷굽을 접어 신어도 그것은 학창시절의 멋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여학생들은 실핀으로 치맛단을 줄여 입는 게 당시 유행 패션이었지 싶다.

지금도 교복은 찬반논쟁의 단골 메뉴다. 대개 찬성파의 논리는 교복이 학생들의 통합과 일체감에 기여하고, 규율 강화와 왕따 방지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반대하는 쪽은 창의성과 개성을 죽이고, 불편하고 비실용적이라는 점을 이유로 든다. 게다가 갈수록 교복 가격이 올라 경제적인 골칫거리가 됐다.

▲올 2학기부터 중학교 신입생에 대한 무상교복 지원을 놓고 제주 교육계가 논쟁을 벌이는 모양이다. 지원방식을 교복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돈으로 줄 건가를 둘러싼 갈등이다. 지난 28일 관련 조례안 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도 교육청과 학부모 단체, 교복제작협회 등의 의견이 복잡하게 얽혔다.

여러 논란에도 무상교복 정책은 사교육비 부담을 줄인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다. 고가 브랜드 교복으로 인한 위화감을 해소함으로써 보편적 교육복지 실현이라는 취지에도 부합한다.

그런 면에서 무상교복 복지는 현금이냐 현물이냐를 다투는 논란거리가 아니라 당사자인 학생들의 만족도를 높일수 있느냐가 요체일 게다. 어떻게 하면 편안하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교복을 입힐 수 있느냐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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