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천만세운동 주역 김시범 선생
김시범 선생은 14인의 동지를 결성하고 만세동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등 조천만세운동을 앞장서 이끌어 왔지만 오랫동안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함께 만세운동을 주도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김시은과는 대조적이다.
김시범 선생은 제주도 신좌면 조천리 출신으로 조천만세운동을 주도하다 경찰에 체포돼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됐다.
이후 1920년 4월 8일 출감해 고향으로 돌아온 김시범 선생은 사숙이나 야학 등을 통해 후진들을 가르쳤고 ‘조천소비조합’ 운동에도 참여했다.
1945년 9월부터 1946년 7월까지 조천면의 초대 면장을 역임했으며, 1945년에는 건국준비위원회 조천면 위원장을 비롯해 민주주의 민족전선 제주도 부의장에 선출돼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4·3 발발 후 미 군정에 검거돼 1948년 11월 25일 부인 신경보와 함께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김시범 선생의 후손들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독립유공자 등록을 신청했지만 ‘해방 후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6차례나 심사에 탈락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가 사회주의 활동자에 대해서도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지 않은 경우 포상을 검토하는 방향으로 ‘독립유공자 포상심사 기준 개선방안’을 확정하면서 2018년 제73주년 8·15 광복절을 맞아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됐다. 조천만세운동이 벌어진 지 무려 99년 만에야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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