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청소
죽음 청소
  • 제주신보
  • 승인 2019.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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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윤 수필가

아쉬움에 버리지 못했던 책들을 모았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짐을 남겨주고 싶지 않으면 청소하세요.” 이 한 마디가 마음을 움직였다. 노인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자신의 나이를 여든에서 백세 사이라고 소개한 마르가레타 망누손이 쓴 책 스웨덴식 죽음 청소의 방법’(The Gentle Art of Swedish Death Cleaning, 2018)이 서재를 청소하게 한다.

임종을 앞둔 환자 이야기가 아니다. 일상의 어질러진 물건들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해방시키는 법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망누손은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태어나 베크만 디자인 대학을 졸업하고, 스톡홀름, 싱가포르, 홍콩 등에서 여러 차례 그림 전시회를 한 화가다. 다섯 명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녀는 부모와 남편의 장례를 치른 후, 유품을 정리하면서 느낀 생각을 모아 이 책을 엮었다.

스웨덴어 데스테드닝(döstädning)”은 죽음과 청소의 합성어다. 살아 있는 동안 더 사용할 것 같지 않은 물건을 미리 내다 버리거나,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행위를 뜻한다. 죽기 전에 주변을 정리하고 단출하게 살다가 가볍게 떠나는 삶이 아름답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런데도 죽음을 의식하지 못한 채 영원히 살 것처럼 모으고 채우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이라도 목숨을 거두어가면 모아 놓은 물건들은 어떻게 될까.

죽음 청소’. 낯설고 나와는 상관이 없는 듯했다. 현재의 삶도 버거운데. 허나 망누손은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65세가 되면 죽음 맞이 청소를 하라 권한다. 새 잎을 위해 제 몸의 잎을 털고 가벼워진 나목(裸木)처럼, 이때부터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고 최소의 물건으로 살라 한다. 마음을 비우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스웨덴에서는 젊은이들도 이 청소를 시작한다. 죽음을 가정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성찰하고, 앞으로 어떻게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쓰지 않던 물건을 꺼내보며 배어있는 사연과 세월을 더듬는다. 물건을 나누어주고, 기부하면서 필요한 이들이 유용하게 쓰기를 고대하고, 또 아름다운 추억을 담기를 바라게 되니 주는 마음이 기쁘다. 줄 수 있음에 삶의 활력을 더하게 된다. 인생 후반기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고 의미 없는 것들로 가려졌던 소중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망누손이 말한 죽음 청소 방법은 첫째 감정이 들어가지 않는 것부터 정리한다. 둘째 내 물건이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지 생각한다. 내게 필요 없다고 생각한 물건을 모아 필요한 사람에게 선물로 주거나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셋째 사진편지손녀가 그려준 그림 등 나에게만 소중한 것은 버리는 상자에 넣는다. 그런 뒤 상자에 포스트잇을 붙여둔다. 가족들이 유품을 정리하기 쉽도록 미리 분류해 두는 것이다. 넷째 디지털 청소도 빼먹지 말자. 유족들은 세상을 떠난 가족의 스마트폰, 페이스북 계정 등 접근하기 어렵다. 소셜미디어 아이디와 비밀번호, 스마트폰 비밀번호 등을 수첩에 적어두자. 가족에게 보여주기 싫은 내용은 미리 삭제하자.

그 후로 주위를 유심히 둘러볼 때가 있다. 내가 어떤 물건들에 둘러싸여 있는지, 있으나 마나 한 것을 부여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가장 먼저 청소한 곳은 서재다. 퇴임 전에 사용했던 손때 묻은 교과서, 자료집, 아이들이 사용했던 도서, 10년 넘게 펼쳐보지 않는 책 등 500여 권을 분류하여 묶었다. 애완견을 내보내듯 미련이 남지만 정리 꾸러미에 넣는다. 비운 책꽂이를 보니 마음도 한결 여유롭다. 집착의 멍에를 벗으니 이전에 느낄 수 없었던 자유로움이 찾아들고, 의미 없는 것들로 가려졌던 소소한 행복을 꺼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죽음 청소는 죽을 준비가 아니라 바로 삶(well-living)’의 준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모든 세상일에 때가 있듯 모을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 남은 이들에게 짐을 남겨주지 않고, 의미 있는 여생을 위해 버림의 영역을 넓혀 가고 싶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내 몸마저 버리고 가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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