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로 확장되어야 하는 ‘연결’
‘관계’로 확장되어야 하는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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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건, 제주특별자치도 사회복지협의회 사무국장

청취자의 고민을 들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한 청년이 사연을 보냈다. 영업사원인 그는 몇 년 동안 영업을 위해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이제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고 지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상대하지 않으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사연을 들은 청취자들이 여러 가지 의견을 보냈고 그 가운데 청년은 ‘등대지기’가 자신에게 딱 맞는 직업이 될 것 같다며 만족했다.

하지만 ‘등대지기’는 그 청년이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의견도 소개됐다. 누군가의 외롭고 험한 밤길을 비춰 주는 직업인 ‘등대지기’야말로 사람을 위한 일이기에 사람과의 관계를 싫어하는 이가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이다. 사연을 보낸 청년이 결국 어떤 새로운 일을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을 상대하지 않는 일자리를 고집하고 있다면 그의 고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관태기(관계+권태기)’현상을 얘기할 만큼 사람과의 관계 맺기를 힘들어 하거나 흥미를 잃고 싫증을 내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사람과의 연결은 물론이고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간의 연결이 가능한 초연결사회,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활용이 일상화된 네트워크 사회에서 ‘연결’에만 길들여진 부작용이다.

‘연결’되지 않은 삶 자체를 상상할 수 없는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차례 울리는 카톡과 밴드의 메시지 도착음, 친구가 새 소식을 올릴 때마다 알려 주는 페이스북 알림 기능으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과 연결된 ‘점’ 하나로서의 나의 존재를 확인 받는다.

딱히 답하고 싶지 않은 글이라도 최소한 이모티콘을 보내야 하고, 솔직히 별 관심 없는 친구의 일상 소식에도 영혼 없는 ‘좋아요’를 눌러야 누군가의 휴대전화에서 지워지거나 친구 리스트에서 정리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이것이 초연결사회에서 낙오되지 않는 생존 비법이다.

그렇게 서로의 휴대전화와 SNS에서 지워지고 정리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는 우리는 과잉수준의 초고속 연결 상태를 누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관계의 결핍’이라는 늪 깊숙이 빠져 있다. 라디오에 고민을 보낸 청년이 ‘연결’에만 집착한 채 정작 ‘관계’맺기에는 미숙해져버린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유대감이나 연대의식이 없는 무미건조한 ‘연결’은 ‘관계’를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관계’일 수 없다. 그래서 휴대전화에 등록된 수백 명의 전화번호나 카톡 친구 수로 자신의 인간관계의 수준을 가늠하는 것은 결코 의미 있는 일이 아니다.

언제든지 버튼 몇 개만 누르면 ‘연결’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고 마음 놓는 순간 ‘관계 결핍’의 늪은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나와 타인이 ‘연결’된 세상을 ‘관계’로 확장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선택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설 명절 연휴 동안 나와 연결된 많은 이들로부터 새해인사 메시지를 받았다. 이름이 저장되어 있는 이가 보낸 것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이들이 보낸 것도 있었다. 어떤 연유로 이들과 연결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올해는 이들과의 ‘연결’을 ‘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 볼 생각이다. 문자메시지나 카톡으로 향하는 손가락을 음성통화 버튼으로 돌리는 작은 실천으로부터 그 도전(?)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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