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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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새로 시작하는 건 의식을 작동하는 일입니다. 꿈꾸려고 동력 엔진을 장착해 첫 걸음을 내딛는 그 몸짓이지요. 새로운 시작점에서 자신을 돌아보면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과 이웃들, 그들은 내게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내가 ‘우리’라는 공동체의 틀 안에서 사회라는 거대한 관계망 속의 한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것임을 의식하고 깨어나는 그 의미일 것입니다.

설 즈음입니다. 사흘 전이 설 명절이었고요. 이번 설은 입춘 뒷날이라 의미를 더했던 것 같아요. 두 날이 하루 격일로 연잇는 경우는 드문 일일 겁니다. 입춘은 24절기의 첫 번째로 봄을 알리는 절기지요. 겨울 추위 속이지만 입춘 하면 단박에 마음 따스해 오지 않나요. 어느새 햇살이 더 야무진 것 같고, 햇빛도 밝아진 것 같다면 나 혼자만의 체감일지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기온이 두 자릿수를 보이며 매섭던 바람도 잠잠했지 뭡니까. 입춘의 입김이라 여기면 한결 마음 따듯합니다.

입춘 다음날이 설, 이렇게 설 즈음으로 이어진 전후 날짜 배열이 우연이 아닌 성싶어요. 설은 ‘낯설다’의 어근 ‘설다’에서 온 말이고, 한 해가 새로 시작되는 날이라는 ‘선날’이 차츰 변해 ‘설날’로 된 것이라고 해요. 또 자중하고 근신한다는 의미의 옛말 ‘섦다’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고요. 어원이 어떠하든 크게 상관없는 일입니다. 세 가지 뜻이 섞여 포개진 것이라면 더욱 깊은 의미를 함축한 게 될 테니까요.

전같이 아이들 설빔으로 색동옷 입히지 않고, 머리에 고운 댕기는 들이지 않아도 설은 특별한 날인 게 맞습니다. 육지에 나가 사는 삼촌, 오빠, 언니, 조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귀성해 옵니다. 오랜만에 집안이 웃음소리로 넘쳐납니다. 늘 그리던 가족들과의 만남은 기쁨이고 축복이지요. 한자리에 모여 앉아 얘기꽃을 피웁니다. 차례 음식을 장만하며 주고받는 대화가 정겹지 않았나요. 짐작건대 화기애애한 속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밤이 깊어 갔을 텝니다.

차례를 지내고 어른들께 세배 드리고 나서 덕담을 듣다 보면, 명절 준비하고 그 치다꺼리로 시달리는 명절증후군도 잠시 뒷전으로 밀려났을 것입니다. 명절엔 집안에 삼사 대가 자리를 함께하지요. 팍팍한 일상 속에서 세대 간 소통의 연결고리로 이만한 기회가 또 있을까요.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아들에게, 또 손주에게 일가의 화목한 흐름이 웃음으로, 눈짓으로 번집니다. 유교적 풍속의 실체란 이런 게 아닐는지요.

차례 상에 올릴 음식을 반드시 예전 격식에 맞추지 않는다고 큰 흠이 되지 않는다는 게 유교적 제례에 대한 저의 입장입니다. 중요한 건 정성입니다. 음식을 직접 만들지 못하면 어떻습니까. 떡집이나 마트에 맞춘다고 안될 것도 없잖아요.

옛 식만을 완고하게 고집할 게 아니라, 취향 따라 간편히 해도 되는 것이지요. 오늘의 시대 현실에 맞게 합리적일 필요가 있어요. 잡요하게 옛날에 머물려는 건 인습입니다. 무조건적 답습은 창조에 반합니다. 새로운 전통으로 계층 간에 조화로워야만 해요. 과거는 계승하게 달라져 갈 때 비로소 빛이 나지요.

설 즈음, 마당가 늙은 동백이 선홍의 꽃을 피웠습니다. 토종이라 곱습니다. 우리의 전통과 풍속도 저 꽃처럼 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음력 정초입니다. 또 한 살을 더 얹었으니 나잇값을 해야지요. 털 것은 털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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