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관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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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유럽에서는 전쟁고아 문제가 심각한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어느 지역에 작은 산을 가운데 두고서 규모있는 두 고아원이 세워졌다. 산 이편의 고아원은 연합군 부대와 가까워서 자매결연을 했다. 그 고아원은 군부대의 지원을 받아서 시설이나 물자가 풍부한 편이었다. 그런데 산 저편의 고아원은 모든 것이 부족했다. 고아원 시설이나 아이들의 영양 상태가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고아원에 관련된 정기 보고서의 내용은 기대와 정반대로 나타났다. 풍요로운 고아원의 아이들 사망률이 열악한 고아원보다 1.6배 정도로 높게 나타난 것이다. 지원을 많이 받은 쪽의 사망률이 당연히 낮아야 하는데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관계 기관에서 조사를 시작했다.

먼저 지원을 많이 받은 고아원부터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조사를 해도 고아원 운영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고아원 측에 책임을 물을 만한 내용은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그 편의 조사를 마친 후에 조사반은 산 너머 저편 고아원으로 갔다. 문서들을 살펴보고 주방과 식당과 아이들의 침실을 돌아보았는데, 전반적으로 열악하다는 점 외에는 특별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고아원에서 아이들이 더 건강하게 지낸다는 말인가? 조사반이나 고아원 원장이나 직원들이나 별로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조사를 마치고 고아원을 나서던 조사반이 고아원 마당에서 조금 특별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고아원 직원은 아닌 듯한 중년 여인이 어린 아이를 열심히 씻기는 장면을 본 것이다. 조사반장이 고아원 직원에게 “저 사람은 누구인가?”하고 물었다. 그 여인은 고아원 아랫동네에 살던 여인이라 했다. 전쟁 중에 자신의 아이 셋을 다 잃어버리고 정신이 반쯤 나간 아줌마라 했다. 그곳에 고아원이 세워진 이후로 거의 언제나 고아원에서 지낸다고 했다. 고아원 아이들을 자신의 아이인 것처럼 착각하면서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하루 종일 그런 일을 한다고 했다.

한참동안 지켜보던 조사반은 결국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풍요로운 고아원 쪽에는 별 문제가 없다. 문제가 있다면 이 편에 있다. 그 정신나간 아줌마 때문에 많은 고아들이 보다 더 건강하게 살아남게 되었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조사를 마쳤다고 한다. 물질과 풍요가 함께했던 고아원보다는 조금 비정상적일지라도 생명의 관계가 살아 움직이는 편이 더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우리나라는 단기간의 성장과 물질과 풍요에 있어서는 앞서 달려온 나라이다. 경쟁하고 갈등하며 달려오는 대가로 소중한 관계들이 많이 깨트려진 나라이기도 하다.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가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소중한 관계들이 여지없이 깨트려져온 것이다. 서로 다른 사상과 입장이 갈등하고 대립하는 가운데 그 어떤 관계도 안전하지 않았다. 갈등과 대립과 불안의 악순환이 우리 사회의 중심부를 장악해온 셈이다.

급변하는 시대에 소중한 것을 다 잃어버려서 희망없이 살아간다 해도, 주변 가까이 있는 고아같은 사람들에게 관계의 손길을 내밀어보자. 정치 경제 사회적인 이유 때문에 생명의 관계를 소홀히 하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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