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만7000명 목소리 ‘해녀의 노래’로 울려퍼졌다
(6)1만7000명 목소리 ‘해녀의 노래’로 울려퍼졌다
  • 김종광 기자
  • 승인 2019.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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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여성·어민 항일투쟁
日 가혹한 해산물 착취가 불씨
부춘화·김옥련 등 해녀 주도로
1932년 3개월간 총 238회 규모
정부, 정당한 평가와 예우 약속
지난달 12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해녀박물관 일원에서 열린 ‘제87주년 제주해녀항일운동 기념식 및 제25회 기념대회’에 참가한 해녀와 참가자들이 일본 도사에게 요구말을 외치며 행진하는 모습을 재연했다. 고봉수 기자 chkbs9898@jejunews.com
지난달 12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해녀박물관 일원에서 열린 ‘제87주년 제주해녀항일운동 기념식 및 제25회 기념대회’에 참가한 해녀와 참가자들이 일본 도사에게 요구말을 외치며 행진하는 모습을 재연했다. 고봉수 기자 chkbs9898@jejunews.com

우리들은 제주도의 가이없는 해녀들 비참한 살림살이 세상이 안다 추운 날 더운 날 비가 오는 날에도 저 바다 저 물결에 시달리는 몸배움없는 우리 해녀 가는 곳마다 저놈들은 착취기간 설치해 놓고 우리들의 피와 땀을 착취해 간다 가이없는 우리 해녀 어데로 갈까”(‘해녀의 노래)

일제강점기 제주 해녀와 어민들은 일제의 폭압으로 매우 어려운 생활을 이어갔다.

해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해녀어업조합을 결성하고 이들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야 할 도사(島司)가 오히려 일본인 상인과 결탁해 해녀들의 이익과 생존권을 침해하기 시작했다.

대표적 사건이 바로 1930년 성산포에서 일어난 우뭇가사리 부정판매사건이다.

일본인 관리들이 당시 우뭇가사리의 시세를 무시한 채 반값에 매입하면서 해녀들과 어민들이 격분하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해녀들에 대한 일본의 가혹한 대우와 해녀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 발족된 해녀어업조합의 폐단은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그러다 1931년 발생한 하도리 사건이 제주해녀항일운동의 도화선이 된다.

이 역시 일본 물산회사가 턱 없이 낮은 가격에 해산물 매입을 강요하면서 발생했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해녀들은 최고 지도자와 대표위원 등을 선출하면서 조직적인 저항을 시작했다.

193112월 구좌읍 일대 해녀들이 조합의 시정을 요구하며 진정서를 도사에 제출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일제의 이러한 행태에 정의와 생존권 쟁취를 위한 해녀들의 격렬한 항의 의지는 날이 갈수록 불타올랐다.

1932년 제주에서는 3개월 동안 총 238, 17000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항일 운동이 해녀의 노래와 함께 퍼져 나갔다. 이 운동의 주체는 제주 해녀들이었다.

해녀항일운동은 여성집단에서 주도한 최대 규모의 항일투쟁이며, 독립운동사상 국내 최대의 어민 투쟁이었다.

193217일 하도, 세화 해녀들까지 합세해 세화장날을 이용해 시위행진을 진행했으나, 일경의 제지로 해산됐다.

신임 제주도사 다구치 테이키(田口禎憙)가 순시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같은 해 112일 구좌읍과 성산읍 해녀 1000여 명이 해녀복 차림으로 나와 세화리와 한동리, 하도리 사이에 집결했다.

 

지난달 12일 열린 ‘제87주년 제주해녀항일운동 기념식 및 제25회 기념대회’ 참가자들이 일본 도사에게 요구했던 요구안을 외치고 있다.
지난달 12일 열린 ‘제87주년 제주해녀항일운동 기념식 및 제25회 기념대회’ 참가자들이 일본 도사에게 요구했던 요구안을 외치고 있다.

도사가 탄 차량이 지나가자 이를 가로막고 우리들의 진정에 아무런 회답이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우리를 착취하는 일본 상인들을 몰아내라! 해녀조합은 해녀의 권익을 옹호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하자 도사는 해녀들의 요구사항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일제는 이러한 해녀들의 생존권 투쟁과 해녀항일운동이 극렬하게 일어나게 된 배후에 혁우동맹 등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단체를 지목하고 이들을 잡아간다.

일제의 이러한 대처는 해녀들을 결집시키는 계기가 된다.

124일 일경과 해녀의 충돌 과정에서 34명의 해녀가 붙잡혔다. 34명의 해녀 가운데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세 명을 제외하고는 전원 석방됐다. 이 세 지사는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이후에도 해녀들의 항일운동은 우도, 종달리 등지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면서, 연 인원 17000여 명이 참여한 국대 최대의 여성 주도 항일투쟁으로 기록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8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1932년 제주 구좌읍에서는 일제의 착취에 맞서 고차동, 김계석, 김옥련, 부덕량, 부춘화 다섯 분의 해녀로 시작된 항일운동이 제주각지 800명으로 확산됐다“3개월 동안 연 인원 17000여 명이 238회에 달하는 집회시위에 참여했다.

지금 구좌에는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이 세워져 있다며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이 다섯 분의 지사들을 언급하면서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재조명하고 정당한 평가와 예우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제주 해녀항일운동을 주도한 해녀 중 한 명인 부덕량 지사의 흉상이 지난해 9월 22일 건립됐다.
제주 해녀항일운동을 주도한 해녀 중 한 명인 부덕량 지사의 흉상이 지난해 9월 22일 건립됐다.

정부는 2003년부터 2008년까지 관련 심사 등을 통해 당시 해녀항일운동을 주도했던 주요 11명을 독립유공자로 추서해 혁우동맹 8인에게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김옥련, 부춘화, 부덕량 등 해녀 3인에게는 건국포장을 수여한 바 있다.

 


 

강창협 해녀항일운동기념사업위원장
강창협 해녀항일운동기념사업위원장

선열 희생정신 계승 위해 해녀항일운동기념관 건립해야

후손들에게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정확히 알리기 위해서는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관 건립이 필요하다.” 강창협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은 해녀항일운동의 계승을 위해 기념관 설립을 강조했다.

강 위원장은 위원회는 1995년부터 매년 112일 해녀탑 광장에서 추모제를 봉행하고, 해녀항일운동 기념식을 갖고 있다이를 통해 후손들이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본받고 계승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해녀항일운동을 주도했던 다섯 분의 지사 중 부춘화, 부덕량, 김옥련 지사 세 분은 옥고를 치른 기록이 있어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을 추서 받았다면서 김계석, 고차동 두 분도 당시 주모자였지만, 근거 자료가 빈약하다. 두 분이 훈장을 받을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 위원장은 제주해녀항일운동은 도내에는 많이 알려졌지만, 아직까지 도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분명한 사실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15일 광복절 축사를 통해 해녀항일운동에 대해 정당한 평가와 합당한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약속했다며 해녀항일운동 기념 사업 추진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현재 해녀박물관의 규모에 비해 제주해녀항일운동 관련 코너는 간단하게 돼 있다면서 항일항쟁의 주역과 그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관 건립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