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하는 유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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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림, 수필가

처음 미국에 가서 언니 집에 있다가 동네 유대 할머니들이 주선해서 언니와 같은 아파트 2층에 할머니 혼자 사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깔끔하고 지적인 유대 헝가리인 할머니였는데 서재엔 세계문학전집과 유명 서적들이 다 있었다. 내가 읽은 책들은 반갑고 못 읽은 책들은 원어로 써 있어 읽을 수 없었다. 헝가리는 우리보다 훨씬 앞선 문명국가였고 찬란한 역사를 갖고 있었다. 그들의 삶과 정신은 종교, 가족, 문화, 교육이고, 가족의 단결과 민족의 단결이다.

3층에 사는 노부부와는 긴 막대기로 아침마다 천장과 바닥을 두드려 서로 안부를 전하곤 했다. 노인들이 오고 가지 않고 전화 값도 아끼는 간단한 방법이었다. 그들은 아브라함 자손들로 철저한 종교관을 갖고 뭉친 민족이기 때문에 율법을 무섭게 여기고 지킨다. 그들은 고기나 음식을 유대인이 장사하는 곳에만 가서 사는데 종교 의식을 치른 재료이기 때문이다. 소를 잡을 때 랍비(목사)가 참석해 기도를 하고 소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한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사순절 등 때에 따라 쓰는 그릇과 수저가 달랐다. 우리도 제를 올릴 때 쓰는 그릇이 달랐지만 한 가지인데 할머니는 세 가지를 소중히 싸서 보관하다가 일 년에 한 번씩 썼다.

그들은 금요일(안식일)엔 자동차나 승강기를 타지 않고 금요일 초저녁부터 토요일 해지기 전까지 철저히 쉰다. 요리도 전날에 다해 놓고 일에 관한 대화도 안 한다. 식사 테이블에는 부득이 참석 못한 식구도 앉는 자리와 음식을 챙겨 정신적으로 항상 같이 있다. 하나 있는 아들이 멀리 살아 매일 아침 정확한 시간에 전화가 온다.

우리 유교의 부모 섬김과 마음가짐은 다를 바 없었지만 우리의 힘겨운 제사의 형식보다는 어려서부터 가정교육으로 이루어진 진실한 애정 표현이 자연스럽고 행복해 보였다. 3층 할아버지는 잘 생기고 인자했는데 나의 좋은 친구였다. 병중인 할머니를 돌보면서 모두를 챙겼다.

내가 함께 살던 할머니가 낮에 갑자기 병원에 실려 갔을 때 계단에 앉아 나를 기다렸다. 내가 무서워 할까봐 딸이 쓰던 방을 깨끗이 치워놓고 짐까지 챙겨 나를 할아버지 댁으로 데려갔다. 할머니도 웃음으로 편안하게 나를 반겨 주었다. 그리고 아침마다 우유에 씨리얼에 딸기 두 개 올려놓으며 먹고 나가라고 했는데 그때는 왜 그리 싫은지 먹지 않고 달아난 날이 많아 지금도 죄스럽다.

저녁마다 옛날 얘기를 많이 들려 주었다. 처음 미국에 와서 세탁소에서 무거운 다리미질을 하다 나이 들어 큰 빌딩 현관지기로 일을 했단다. 하루는 월급 통장 금액에 공이 너무 많아 놀래서 밤을 꼬박 새워 고민을 하다가 다음 날 아침 사장실을 찾아 보여줬단다. 사장은 아직 모르고 있다가 놀래서 “당신이 우리 회사를 살렸소” 그때는 전자화되지 않아 타이프로 찍던 시대였고 은행에서 돈을 찾아 도망가면 찾을 길이 없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할아버지는 회사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다. 회사를 퇴직하고 20년이 다된 그때까지 매월 회사원이 똑같은 월급을 갖고 직접 찾아와 잘 있는지 보고 매년 정기 건강 검진을 하러 데리고 갔었다.

가슴이 찡했고 그들의 인간성이 한없이 부러웠다. 올바름과 선행은 그 몇 배의 복으로 돌아오는 것을 직접 보았다.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살면서 실천하는 것인데 혼자서, 아니 각자가 실천 하기에는 너무 혼탁해진 우리 사회가 안타깝고 한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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