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로운 날(吉日)
상서로운 날(吉日)
  • 제주신보
  • 승인 2019.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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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우리 조상들은 큰일을 치를 때 길일(吉日)을 택했다. 민간신앙의 하나로 ‘손 없는 날’이라고도 했다. 즉 손 없는 날은 악신이 돌아다니지 않아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상서로운 날을 의미한다.

요즘도 다른 건 몰라도 혼인날과 이삿날은 택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자녀를 분가시키는 부모들은 신혼부부 살림집에 가구 들이는 날을 잡기도 한다. 그 날짜에 맞춰 가구가 준비되지 않으면 전기밥솥이라도 먼저 가져간다.

심지어 먼 길을 떠날 때도 마찬가지고, 못 하나 박는데도 손 없는 날을 따졌다. 말로는 ‘그런 게 무슨 대수겠느냐’고 하면서도 속으론 ‘기왕이면 좋다는 대로 해야지’ 하고 넘어간다. 이유는 단순하기 그지없다.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리라.

▲결혼 택일은 ‘날받이’라 해서 큰일로 여겼다. 철학관을 찾아 신랑 신부의 나이와 운세에 따라 살이 든 날을 빼고 복이 든 날을 택한다. 기왕이면 좋다는 날을 골라 결혼하려는 게 인지상정인 거다.

하지만 결혼 당사자들의 생년 생월 생일 생시(사주)와 연결시켜 택일하는 것이기에 모두에게 길한 날은 애당초 성립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또 ‘길일 운’이라는 것도 당일에만 유효하고 결혼생활과는 무관하다는 풀이도 있는 걸 보면 굳이 좋은 날이라고 한데 몰려 북새통을 벌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무슨 무슨 날’이니 하면서 떠드는 것 자체가 일종의 협잡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풍습은 세월을 따라 바뀌는 것인 데도 괜한 금기를 만들어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게 아닌가도 싶다.

▲봄철 결혼시즌을 앞둬 도내 예식장마다 결혼식 예약이 밀려드는 모양이다. 3~5월 사이 호텔 예식장의 예약률이 80%를 웃돈다. 특히 ‘길일’ 주말은 예약이 끝난 상황에도 문의 전화가 잇따르고, 벌써 가을시즌과 내년에 결혼할 고객 유치에 나서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길일’은 참으로 이상하다. 그 많은 길일은 다 어디가고 주말에만 예식장이 법석이다. 잔치가 있는 집마다 좋다는 날을 고르기 위해 역술인을 찾을 터인데 말이다.

올해 기해(己亥)년은 황금돼지에 해당한다. 기해일인 1월2일, 3월3일, 5월2일, 7월1일, 8월30일, 10월29일, 12월28일을 특별히 길일로 친다고 한다. 모쪼록 황금돼지해에 결혼하는 이들의 앞날에 복이 가득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