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제주 전역에 임시정부 선포문 등 배포
(7)제주 전역에 임시정부 선포문 등 배포
  • 강경태 기자
  • 승인 2019.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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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5월, 조봉호 지사 독립희생회의 모금 요청 수락
50일 동안 군자금 모금에 총 4450명 참여·1만원 모여
같은 해 7월 경찰에 발각…홀로 모든 책임 지고 희생해
제주 성안교회 초창기 기념사진. 사진 맨 아래 왼쪽에서 2번째가 조봉호 지사, 5번째가 이기풍 목사이다.<출처: 조봉호 지사 증손자 조재석씨 제공>

1919년 기미 독립만세운동은 중국, 만주. 시베리아, 미국 등 해외에서 싸우던 망명 독립운동가들에게 큰 충격과 변화를 안겨줬다.

새로운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4월 중국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연통제를 통해 국내와 비밀연락망을 조직해 자금 조달과 독립운동을 지휘하도록 했다.

연통제에 따라 국내에서 비밀결사 단체인 독립희생회가 조직됐다.

독립운동 모금을 도맡은 독립희생회는 독립군 육성자금 5000만원을 모금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모금 활동을 펼쳤다.

같은 해 5월 제주를 찾은 독립희생회 연락원 김창규는 당시 제주 성내교회 전도사 조봉호를 만나 임시정부 선포문과 해외통신문을 전달하며 독립희생회 조직과 함께 회원 1인당 2원씩 모금해 줄 것을 요청한다.

이를 즉석에서 수락한 조봉호는 평소 친분이 있던 최정식을 찾아가 모금운동 동참을 요청한다. 이들은 제주지역에서 독립희생회를 조직하기 위해 김창국 목사를 찾아가 모금 운동을 알렸고, 김 목사는 제주지역 윤식명, 임정찬 목사들을 포섭하겠다고 약속한다.

 

제주시 삼도1동에 위치한 제주 성내교회.

이와 함께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 직원 김창언을 통해 법원 등사판을 몰래 빼내 임시정부 선포문과 해외통신문을 비밀리에 만들었다.

이들은 제주 전 지역에 걸쳐 연락망을 조직하고 교회 신도는 물론 일반 주민들을 대상을 제작한 등사물을 배포해 모금운동을 벌인다.

김창국 목사는 구좌읍 세화리부터 한림읍 수원리까지, 윤식명 목사는 한림읍 한림리부터 서귀포시 중문동까지, 임정찬 목사는 서귀포시 중문동부터 구좌읍 상도리까지 분담해 528, 29일 이틀간 제주지역 교회와 주요 지점에 임시정부 선포문과 해외통신이 일제히 배포했다. 제주 각 지역에 전단이 배포되고 약 50일 동안 군자금 모금운동에 부응한 도민은 4450명에 이르렀다.

이들이 헌금한 돈은 1만원에 이르렀다. 당시 쌀 한 가마니가 4원가량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많은 금액이 모금된 것이다.

조봉호, 최정식, 김창국 등 제주지역 독립희생회 간부들은 모금액을 연락원 김창규에게 전달, 중국 상해 임시정부 이시영 재무총장에게 송금한다. 비밀리에 진행된 모금 운동은 곧 일본 경찰에게 발각된다.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 소재 가족묘지에 세워진 조봉호 지사 추모비.

조천만세운동 이후 각지에서 동향을 감시하는 데 혈안이었던 일본 경찰은 300여 장에 이르렀던 임시정부 선포문과 해외통신문을 발견한다. 전단이 비슷한 시기에 제주 전 지역에 배포된 사실을 알게 된 일본 경찰은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모의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큰 배후가 있을 것으로 보고 비상경계령을 내리는 등 주동자 검거에 나섰다. 같은 해 7월 조봉호, 최정식, 김창국 등 60여 명이 일본 경찰에 검거된다. 정사범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붙잡힌 이들에게 문초와 고문이 뒤따랐다. 이때 조봉호는 자기 한 몸을 희생해 동지들을 살릴 방법을 고민한다.

조봉호는 우리의 독립운동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독립될 때까지 장기적인 것이므로 이번에 많은 희생자를 내면 계속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운동은 한 두 사람이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 한다. 이번에는 내가 책임을 질 것이니 여러 동지들은 나 외에는 일체 이름을 대지 말라고 말했다.

이 사실은 곧 동지들에게 연통돼 조봉호가 전 책임을 지게 됐다.

같은 해 925일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최정식은 징역 3, 조봉호는 징역 2, 문창래는 징역 6월이 언도됐다.

함께 기소된 23명은 선고유예 처분을 받으며 석방될 수 있었다.

최정식, 조봉호, 문창래는 권유에 따라 같은 해 10월 대구복심법원에 항소했다.

곧 대구로 호송된 이들은 같은 해 1112일 감형을 받게 된다. 판결은 최정식 16, 조봉호 1, 문창래 무죄 등으로 확정됐다.

그러나 동지들을 살리기 위해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던 조봉호는 192042838세 나이로 대구형무소에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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