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제주교구의 3·1운동 100주년 기념
천주교 제주교구의 3·1운동 100주년 기념
  • 제주신보
  • 승인 2019.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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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형, 前 백록초등학교장·동화작가

금년이 3·1운동 100년이 되는 해다. 2·8독립선언의 영향을 받은 선각자들이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만세운동을 펼쳐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염원을 전 세계에 알렸고, 상해 임시정부수립으로 연결되었으니 역사적으로 매주 중요한 사건이었다. 비무장으로 총칼을 앞세운 일본 경찰과 헌병을 향해 독립을 외쳤다는 것은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의 거룩한 행진이었다.

천주교는 2010년 3월 26일 명동대성당에선 정진석 추기경의 집전으로 안중근 의사의 순국 100주년을 맞는 기념미사를 봉헌하면서 3·1운동에 대한 천주교의 반성을 담은 입장을 표명하였다. 당시 천주교는 3·1운동에 매우 소극적이었다. 그런데 신자들 중에는 죽음을 무릅쓰고 항일의 길에 나선 이가 많다.

제주의 대표적인 항일운동은 제주의병을 시작으로 조천 만세운동과 법정사 항일독립운동, 제주해녀항쟁이다. 또한 천주교 신자로 경기여고보 사범과에 다니던 강평국, 고수선, 최정숙은 삼일절 만세행진에 참여하였고, 최정숙은 사범과 대표로 8개월이나 서대문 형무소에서 고통을 당했다.

제주도의 천주교 항일운동을 되짚어 보면 일제는 도내 반일세력을 제거하고자 적성국인 영국 국적의 아일랜드 선교사들과 그들이 소속된 천주교회를 탄압했다. 당시 손신부(Dawson, Patrick)와 서신부(Sweeney, Augustine) 그리고 나신부(Ryan, Thomas. D.)는 일본군이 무력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을 억압하는 것으로 보며 분개했다. 신문과 라디오 방송에서 일본군의 패전은 다루지 않고, 승전 소식만을 전하는 것을 보고 신도들에게 불공정한 보도를 비난하면서 비밀리에 제주의 상황을 외국 언론에 알렸다.

알뜨르비행장이 외국잡지에 사진과 함께 게재되자 일본 군부는 군사기밀이 적성국가에 누설되었다며 범인 색출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당시 모슬포에서 개업의사로 있던 변태우는 1938년 제주읍 천주교회의 나신부에게 모슬포 소재 해군비행장의 면적, 주둔군 인원, 비행기 대수 등에 관한 질문을 받고 아는 대로 소상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한다.

1941년 10월께 외국인 신부 3명과 신도 35명이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외국인 신부 3명과 신도 10명이 형무소에 갇히고, 1명은 재판을 받기도 전에 고문을 이기지 못하여 옥사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제주는 뒤숭숭했으며, 제주 중앙성당은 일본군 병원으로 바뀌어 버렸다가 해방이 되어서야 성당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천주교 제주교구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기념위원회를 만들고, 애국지사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사업을 전개하여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한다. 3·1절 기념미사를 시작으로 최정숙 뮤지컬 공연,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을 하다 건강이 악화되어 숨을 거둔 강평국의 심포지엄을 여는 등 민족자결주의에 입각한 비폭력 평화운동을 이어받은 3·1운동의 정신이 제주인들의 가슴속에 뜨겁게 타오르기를 바라고 있다. 4·3의 도화선이 되었던 3·1절 기념식을 되새기면서 3·1운동 100주년을 의미있게 보내는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