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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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지난 설 연휴 때 관람한 영화 극한직업은 일선 경찰서 마약반 형사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24시간 범죄조직을 감시하기 위해 범죄자들이 은닉하고 있는 아지트 앞 치킨집을 인수해 위장 창업을 한다. 그동안의 실적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선택한 고육지책이다. 형사 5인방은 영업을 위해 닭을 잡고, 썰고, 튀기고, 버무리는 극한 작업에 내몰린다.

치킨집은 일약 전국구 맛집으로 입소문이 난다. 가게에 손님은 미어터지고, 단체 관광객들까지 들이닥치지만, 학수고대하는 범죄자들로부터 배달 주문은 없다. 자신들도 점차 ‘범인 잡으려고 치킨집을 하는 것인지, 치킨집을 하려고 범인을 잡으려고 하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영화 속에서 형사반장(류승룡 분)의 멘트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관통한다. 마약밀매조직 두목(신하균 분)과의 격투신 와중에 “소상공인을 모르나 본데, 우린 다 목숨 걸고 해”라는 대사는 압권이다. 매일 매일 사투를 벌이다시피 하는 소상공인들의 생존 본능을 ‘목숨 걸고 한다’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촌철살인의 말투가 녹아들었기에 흥행에서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자신만의 ‘극한직업’에서 느끼는 심적 부담은 영화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다고 본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자영업자·소상공인 수는 564만명에 달한다. 전체 취업자 4명 중 1명꼴이다. 그들이 선택하는 업종 중 대표적인 것이 치킨이다. 우리나라 치킨집은 2017년 기준 2만5000여 개로 추정된다. 이러다 보니 3년 이내 폐업률(38%)도 가장 높다. 목숨 걸고 해도 살아남기 힘들다.

지난 1월 기준으로 실업자 수는 122만명으로 19년 만의 최고치다. 경기 침체가 가팔라지면서 비교적 ‘괜찮은 일자리’에서도 실직자가 쏟아지고 있다. 이들의 최후 피난처는 실업급여다. 1월 한 달간 전국에서 46만6000명이 6256억원을 받아갔다. 그들의 꿈은 실업급여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것이다. 그 과정 또한 쉽지 않은 극한작업이다.

▲ 오늘은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다. 춥던 날씨도 누그러져 봄기운이 돌고 있다. 음력 새해의 첫 보름을 뜻하는 정월 대보름이기도 하다. 보름달은 생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현실의 ‘극한직업’에는 언제 봄이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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