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포럼]‘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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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남자와 두 여자가 있다.

한 남자는 한 여자를 어머니라고 부른다. 그러나 어머니라 불리는 여자는 남자에게 아버지라고 한다.

또한 한 여자는 다른 여자에게 어머니라고 부르고, 또 다른 여자도 어머니라고 부르는 여자를 어머니라고 한다. 이 세 사람은 어떠한 관계일까.

남자와 한 여자는 다름 아닌 아들과 며느리이며 또 다른 여자는 어머니인 셈이다. 단지 어머니가 치매(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있어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아들과 며느리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제주지역에서 너무나 슬픈 일이 일어났다.

제주시 건입동에 살고 있는 치매 할머니가 어린 손자를 데리고 집을 나갔다. 추운 계절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했다. 결국 이틀쯤 지나 집에서 멀리 떨어진 아라동의 한 과수원에서 둘 다 숨진 채 발견됐다.

치매에 걸려도 어린 손자를 살리려는 보호본능이 있었던 것일까.

할머니는 손자를 꼭 껴안은 채 함께 숨져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지난 달 3일 제주시 애월읍에 주소를 둔 80대 치매 할머니도 집을 나갔다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처럼 치매 노인들이 자신도 모르게 집을 나갔다가 숨지는 경우가 자꾸 일어나고 있다.

치매는 사람들이 나고 자라면서 경험한 모든 기억을 없앤다.

첫 자녀를 본 기쁨의 순간도 잊어버리고 결혼 첫 날 밤의 수줍음도 잊어버린다. 따뜻한 봄날 졸렸던 기억도, 추운 겨울날 꽁꽁 얼었던 기억도 잊어버린다. 그토록 오랫동안 생활을 같이 한 자녀들도 기억에서 사라져버린다.

치매는 기억이 제로인 백짓장 인 셈이다. 그 백짓장에 새로운 기억도 담을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치매를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이라고 한다.

통계에 따르면 제주지역 인구 100명 가운데 11명이 65세 이상 고령자라고 한다. 또한 60세 이상 노인 중 70%가 독립생활이 가능하거나 따로 사는 것이 편해서 자녀와 함께 살고 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제주지역은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치매로 인한 문제가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치매 노인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지방자치단체는 물론이고 국가 차원의 지원까지 뒤따라야 치매노인의 안전망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정부는 올해 7월부터 노인장기요양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한다.

치매노인 등을 포함해 노인성질환자를 1∼3등급으로 나눠 집이나 시설에서 요양토록 하는 제도다.

문제는 각종 전문 치료 시스템을 갖춘 고품질 시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의 본인 부담금(시설 급여 20%, 재가 급여 15%·기초생활수급권자는 전액 무료)을 점차 줄여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자녀가 있는 맞벌이 부부의 경우 본인 부담금 자체가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처럼 치매노인에 대해 질 높은 국가 차원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데 있다. 우리는 치매 노인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갖춘 존재로서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치매 치료약이 개발될 것이다.

그러나 치매 치료약보다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은 그들을 아끼고 보호하려는 우리들의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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