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 유감(問喪 遺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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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권일 농업인·수필가

죽음은, 삶이라는 이름의 무대에 대단원의 막이 내리고, 주인공을 비추던 조명이 완전히 꺼지는 일이다. 고고지성(呱呱之聲)으로 시작되었던 한 사람의 삶이, 표표히 이승과 작별하는 장엄한 통과의례이다. 관객들의 간절한 커튼콜에도 결코 열리지 않고 재연될 수도 없는, 일기일회(一機一會)의 연극과 같은 것이다. 때문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인(知人)들의 죽음 앞에서 한없이 무력(無力)하고, 손길 닿을 수 없는 그리움에 부복(俯伏)한다.

그리하여 문상(問喪), 경의(敬意)와 함께 창졸지간(倉卒之間)의 영결(永訣)에 대해, 살아남은 자들이 망인(亡人)께 바치는 비장하고 장엄한 마지막 예의이다.

아마도, 인생의 내리막을 걷는 나이 탓일 것이다. 조간 지방신문에서 제일 먼저 눈이 가는 곳이 부고(訃告)이다. 저승의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혼불.

그 중에, 이러구러 인연을 맺었던 분이나 그 가족들의 이름을 만나면, 놀란 가슴 철렁 내려앉는다.

백세인생이라는데,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데, 무엇에 쫓겨 서둘러 저승길 가셨는가. 애도와 더불어, 힘들어 할 가족들의 슬픔이 노년의 가슴팍을 묵직하게 짓누른다.

옷매무새 가다듬고, 문상을 위해 길을 나선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장례식장들이 장터처럼 시끌벅적하다.

고인에 대한 정중한 조의(弔意)보다는, 문상객과 상주들의 친목을 확인하는 거래소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당 빈소(殯所)에 죄인처럼 좌우로 도열하여, ‘()소리로 문상객들을 맞이 해야할 상주들은 온 데 간 데 없다. 대신 식당 안을 바삐 오가며, 부조금 받고 답례품 전달하느라 여념 없는 상복(喪服)들만 어지럽다. 영정 홀로 남겨진 빈소는, ‘벤치클리어링으로 선수들이 뛰어나간 선수 대기석처럼 텅 비어 있고.

이런 이유로, 문상객들은 빈소 앞에서 자주 길을 잃는다.

부조함에 부조금을 넣으면, 개별 부조금을 기대하는 상주의 눈치가 보이고, 빈소를 외면하면 망인에 대한 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망인과의 친소(親疎) 정도, 또는 함께 간 동료들의 선택에 휘둘려 빈소와 식당행이 갈린다.

세태가 이렇다 보니, 부조금(扶助金)도 서민들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지난날에는 일정액을 부조함에 넣으면, 모든 상주들에 대한 부조로 갈음되었다. 그런데, 점차 남녀 상주(喪主)들 각각에 대한 부조 행태가, 대세로 자리를 잡으면서, 가깝게 지내는 상주가 많은 경우는 지출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개인별로 주고받는 상부상조라고 하지만, 평소 왕래가 드물었던 상주에게는, 알면서도 도둑 제 발 저린 격으로 못 본 척 얼굴 돌릴 수밖에.

경건하고 정중해야 할 문상이, 물신(物神)이 지배하는 부조문화에 밀려, 본말(本末)이 전도(顚倒)되어 가는 세태가 정말로 안타깝다.

그나저나, 망인들께서는 요즘 유족들과 문상객들 보시면서, 어떻게들 생각하시는지. 도통 말씀들 없으시니, 그 속내 괜스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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