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오름왕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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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조, 제주숲치유연구센터대표·산림치유지도사/논설위원

제주의 숲과 오름은 곡선이다. 백록담에서 바닷가까지 이어진 능선은 유연하다. 마치 출렁이는 파도처럼 높아졌다 낮아지고 커졌다 작아지고 끊어질 듯 끊이지 않고 부드럽게 흐른다. 그곳에서 나고 자라는 생명들 또한 마찬가지다. 둥글둥글 보름달처럼 여유롭다.

사람들도 숲과 오름에 들면 딱딱하게 굳어졌던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풀린다. 곡선들이 춤추는 드넓은 경관을 볼 때마다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 쌓였던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그들이 보내는 곡선미에 저절로 편안해진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숲과 오름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있다. 2017년 11월 제주연구원이 발표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숲과 오름을 찾는 인구는 연간 220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수치는 도민과 관광객 모두 합친 것이다. 도민만은 연간 349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만큼 숲과 오름은 누구에게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켜주는 중요한 치유자원이며 보물이다.

특히 숲과 오름은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함을 갖고 있다. 368개의 오름과 울울한 숲이 있다. 바다가 있고 해안선이 있다. 너른 들판과 계곡이 있다. 이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엮어진 거대한 오름왕국이다. 자기 닮음 프랙털 특징이 뚜렷하다.

또한 오름왕국에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됐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설화로 이야기할 땐 오름왕국 창조 인물 설문대할망을 빼놓을 수 없다. 설문대할망은 흙을 지어 날라 한라산을 만들고 나르면서 떨어진 흙들이 오름이 되고 구릉지가 됐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그렇게 해서 건설된 오름왕국은 타원형을 이룬다. 오름왕국의 평편도를 보면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낮아지면서 비스듬하게 놓여 있다. 마치 달걀과 같은 모양이다. 달걀은 생명이며 탄생이며 둥지를 상징한다.

오름왕국 기둥인 한라산은 어머니 산이라고 부른다. 한라산이 어머니라면 오름은 자식이 된다. 그리고 오름보다 더 나중에 태어난 알오름은 어머니의 손자가 된다. 또한 오름이 생성된 이후에 식물과 동물이 나고 자랐다. 그래서 오름왕국은 설문대할망부터 5대에 걸친 계보가 형성되면서 스토리텔링이 만들어진다.

뿐만 아니라 오름은 집단적으로 모여 큰 도시를 형성하기도 하고 홀로 독립해 있기도 한다. 또는 알오름과 함께 살기도 한다. 그럼에도 오름끼리는 서로서로 혈관처럼 크고 작은 능선으로 연결된 씨족사회이며 거대한 공동체사회를 이루고 있다.

오름들 하나하나는 독립된 가정으로 볼 수 있다. 오름에는 마그마가 솟구쳤던 분화구가 있다. 이를 다른 말로는 굼부리라고 한다. 용암이 흘러내리는 방향에 따라 굼부리 모양이 다양하다. 원추형·원형·복합형·말굽형 등으로 나눈다. 이들 중에서 굼부리가 없는 원추형 오름을 숫메라고 한다. 선비를 상징한다. 굼부리가 있는 오름은 암메라고 한다. 부인을 상징한다. 이들은 가정을 꾸리고 있는 세대주다. 식물정원을 가꾸고 있다. 해발고도에 따라 가꾸는 식물 또한 다양하다. 권역별로 해안저지대·중산간지대·저고산지대·고산지대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그곳에는 사람들도 살고 있다. 해안가나 구릉지 등에 터를 잡고 있다. 이렇듯 무수한 생명들은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과 함께 살다가 오름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 같은 순환의 고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래서 오름왕국에는 모든 것을 품어 안은 곡선의 치유에너지가 스토리텔링처럼 도도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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