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을 맞이하는 들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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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업 전략사업본부장 겸 논설위원

오늘은 만물이 소생하는 경칩(驚蟄)이다. 한자로 놀랄 경(驚)과 숨을 칩(蟄)을 쓴다. 땅속에서 몸을 움추리고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 뱀, 벌레 등이 봄기운에 놀라 잠에서 깨어난다는 의미다. 24절기 중 세 번째 절기로, 우수(雨水)와 춘분(春分) 사이에 있다.

이즈음이 되면 겨울철의 대륙성 고기압이 약화되고 이동성 고기압과 기압골이 주기적으로 통과하게 돼 한난(寒暖)이 반복된다. 그로 인해 기온이 날마다 상승해 봄기운이 완연해지기 시작한다. 춥던 날씨도 풀리면서 말 그대로 상춘지절(常春之節)에 접어드는 셈이다.

▲경칩은 농가월령(月令)에서도 중요한 절기다. 식물의 첫 싹이 트는 만큼 이를 보호하고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엔 경칩이 지난 첫 해일(亥日)에 왕이 상징적으로 경작하는 적전(籍田)에 나가 농사를 권하는 선농제(先農祭)를 행하기도 했다.

땅이 녹고 봄바람이 살랑거리면서 농촌 일손도 더불어 바빠진다. 농기구를 정비해 본격적인 농사 준비를 하는 시기여서다. 과거엔 경칩에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해서 벽을 바르거나 담장을 쌓았다. 보리 싹의 성장 상태를 보고 그 해 농사를 예측하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제주에는 중산간 일대의 마른풀에 불을 놓는 들불놓기(火入)란 독특한 풍습이 있었다. 진드기 등 해충을 없애고 새풀이 잘 돌아나기 위함이었다. 마소를 방목하기 전 해마다 되풀이했던 중요한 연중행사였다. 제주어론 ‘방앳불 놓기’라고 했다.

방앳불을 놓을 때면 한라산 기슭 여기저기서 연기가 솟아 올랐다. 날이 어두워지면 붉은 불길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마치 커다란 꽃무늬가 밤하늘 아래 수놓은듯 멋진 장관이었다. 매년 이맘때면 중장년층 이상의 도민들에게 떠오르는 아련한 기억이 아닐 수 없다.

▲한데 경칩을 전후해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공유하는 ‘불꽃의 향연’이 연례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7일부터 10일까지 애월읍 새별오름에서 열리는 ‘2019 제주들불축제’가 그것이다.

1997년에 시작돼 올해로 어느덧 22번째를 맞는다.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오름 하나를 시뻘겋게 물들이는 불꽃쇼가 연출돼 ‘지상 최대의 불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도민과 관광객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고 하니, 이번 주말 오름 불놓기로 새봄의 기운을 만끽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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