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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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간밤에 꿈을 꿨다. 스토리가 모호하고 전개가 불투명했지만 안에서 무엇이 깨어나 꿈틀거렸던 것 같다. 무의식이 끼어들면서 상당히 엉뚱한 방향으로 풀어 간 걸까. 벌써 봄이라 개꿈이었나. 단지 그런 것이었을까. 하지만 뭔가 꿈속에 여운이 있다.

꿈은 고향 구좌읍 세화에서 시내로 출근하는 과정이 미묘하게 타래로 엮이며 펼쳐지기 시작했다. 고향을 떠나온 지 반세기가 훨씬 넘었는데, 밑바닥에 잠들었던 한 가닥 기억의 잔상이 꿈으로 굴절됐을지 모른다.

꿈은 시대를 까마득히 잊고 엉뚱하게도 먼 과거의 모퉁이를 한 바퀴 돌아 나오고 있었고, 나는 버려지듯 신작로에 혼자 있었다. 울퉁불퉁하던 길 위에 그때 주둥이 나온 버스 한 대 보이지 않는다. 폴폴 먼지 푸석이며 내닫던 지프차나, 짐 잔뜩 싣고 탈탈거리던 둔중한 트럭도 한 대 눈에 띄지 않았다.

출근길이라 나는 무척 설쳐대고 있었다. 차를 타야 하는데 뎅그러니 찻길에 혼자라 안절부절못해 쩔쩔맸다. 애태우며 버둥거리는데 뜬금없이 눈앞으로 자전거가 불쑥 나타났다. 발 동동 구르던 내게 자전거는 구원이었다. 아잇적에 자전거 타는 걸 배워두기를 참 잘했다고 자신을 다독이면서 올라타선, 다급히 페달을 밟았다.

고르지 못한 길이 오르막의 연속으로 굽이친다. 그래도 자전거는 미끄러져 나아갔다. 생각지 못한 일이다. 행선지에 늦지 않게 도착할 것 같다. 김녕에 이르러 또 한 번 요동치는 굽잇길(옛날 아리랑고개라 하던)을 만나 다리가 휘주근했지만, 그도 방해가 되지 않았다. 내겐 시간 안에 도착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꿈속에서도 나는 교단에 서 있었다. 첫 교시 수업에 늦으면 안된다. 목표는 간절했다.

너덧 마장인가. 그 먼 길을 20분에 주파해, 나는 희색만면했다. 놀라운 기록을 세운 것이다. 꿈은 그렇게 날개를 접고 길모퉁이로 가뭇없이 사라졌다. 과거의 어느 학교에 이르거나 하는 마지막 단락이 흐지부지된 채 꿈은 막을 내렸다.

잠을 깨고 보니 100주년 삼일절 날이다. 평소 걷기운동을 조천만세동산에서 해 온 데서 꿈이 그곳을 스치고 지났던 건 아닐까. 왜 가까이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멀리 제주시내로 내달렸던 걸까. 정년퇴임을 한 지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교육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도 질병 수준일 테다. 쉬이 털어내지 못하니 문제다. ‘나’라야만 한다는 건 아니라면서도 자유롭지 못하니 그런다.

삼일절 기념식에서 애국가를 4절까지 제창했다. TV를 보며 내외가 함께 불렀다. 합창단이 부르는 삼일절 노래도 새롭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슬슬 흘러나온다. “한강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하!” 고음에 닿아 목이 멨다. 노래를 배운 게 초등학교 때다. “흙 다시 만져 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나는 광복절 노래를 부르면서도 숨이 꽉 막힌다.

의식노래는 계기교육으로 매우 소중한데 이젠 뒷전으로 밀리는 듯하다. 기념 공연이라고 무대를 펼치지만 삼일절노래도 모르면서 100주년의 의의를 공유할 수 있을까. 좀 생뚱맞은 듯해도 간밤의 꿈과 무관하지 않은 성싶다. 교육 현장에서 잘하겠지만 왠지 속이 타고 목마르다. 내 꿈이 단지 백일몽이 아닐 것이다. 손자가 일곱 살일 때 애국가를 4절까지 배워 줬다. 중3인데 잘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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