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의 고민, 갈 길이 먼 해양쓰레기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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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초빙교수/논설위원

제주올레의 서명숙 이사장은 한 해를 걷기로 시작한다. 꼬닥꼬닥 걷다 보면 평소에 잘 떠오르지 않던 아이디어나 풀리지 않던 고민이 저절로 해결된다는 그에게, 올레는 새해를 설계하기에 더 없이 좋은 장소이리라. 그 뒤를 따라서 걷는 길은, 뜻밖의 선물처럼 내게도 평온한 휴식과 사색의 시간을 안겨주었다. 제트기가 별명인 나에게, ‘놀멍, 쉬멍, 걸으멍’이란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극기 훈련이기에.

더욱이 올레 20코스는 오솔길, 마을길, 돌담길 들이 아늑하게 이어지는 곡선이었다. 마치 수채화 풍경 속을 걷는 듯도 하여, 저절로 몸과 마음이 다소곳해지는 찰라. 문득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김기림 시인의 ‘길 ’이 떠올랐다. ‘나의 소년 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는. 그런데 그 시의 명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우리들의 눈앞에 은빛 바다가 펼쳐졌다. 고운 모래사장 너머로 푸른 하늘빛에 함북 젖어서 연초록으로 빛나는 김녕바다.

역시 제주올레는 바다가 있어 가슴이 파도친다. 우리는 시인의 소년처럼 그 길을 뛰어넘어 바닷가로 내려갔다. 그런데, 맙소사. 이제 곧 봄이 찾아들 그곳에, 쓰레기들이 진을 쳤다. 스티로폼, 음료수병, 폐어구 들이 바닷물에 저려진 형상들이다. 바다는 주인 없는 거대한 쓰레기통인가?

그러고 보니, 서이사장의 새해맞이 올레걷기는 제주도의 21코스 전체를 점검하는 사명이었다. 그 길에서 깊어지는 그의 고민은 해마다 늘어가는 해양쓰레기. 제주도는 외국에서 해류를 타고 해안으로 밀려오는 해양쓰레기 비중이 전국에서 가장 높다. 우리나라 해양쓰레기는 연간 18만t. 육지에서 발생한 것이 67%다. 하지만 제주도는 섬의 특성과 쿠로시오 해류의 영향으로 외국산 쓰레기가 40%를 넘는다. 대부분 중국에서 기인한 것들로, 청정제주를 위협하는 제1의 오염물이다. 1988년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남태평양의 핸더슨 섬은 자연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어 ‘태평양의 보석’으로 불렸다. 그러나 지금은 밀려온 플라스틱 용품에 뒤덮여 쓰레기 섬이 되었다.

해양수산부 통계에 의하면 제주지역의 해양쓰레기 발생량은 약 2만t으로, 전남·경남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다. 그러나 수거량은 1만4000t에 불과해 쓰레기 수거가 원활치 못한 실정이다. 그래서 제주도의회가 ‘해양쓰레기 없는 아름다운 해안 가꾸기 조례’를 제정했다. 청정바다지킴이를 투입해 쓰레기 수거율을 높이겠단 취지다. 올해 들어 제주도는 152명의 청정바다지킴이를 투입했다. 지난해보다 30% 가량 증원된 수치다. 하지만 이들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바다가 거칠어지면 쓰레기가 끊임없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바다로 들어온 쓰레기는 일부가 해안에 밀려오거나 바다를 떠다니지만, 90%가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특히 봄이 오면 서귀포 바닷가에 쓰레기가 급증한다.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는 연유다. 김동환 시인의 산 너머 남촌은 진달래 마을이지만, 우리들의 남촌은 동중국해다. 벌써부터 우리 집 앞 보목 바다에는 쓰레기가 늘었다. 올레길 이후 시작한 내 집 앞 쓰레기 치우기가 아득하다. 개봉박두의 쓰레기 상륙전을 어찌할 것인가.

일본 가라쓰시는 관광과와 수산과가 연대해서 해양쓰레기를 처리한다. 청소는 주로 바다에 생업을 둔 지역주민이 담당하고 임금을 받는다. 우리의 해양쓰레기에도 관광의 관점과 어촌의 참여가 더 필요하다. 올레의 고민을 해결하려면 총체적 품질관리(TQM)가 요구된다. 수거된 쓰레기가 여전히 쌓여 있는 올레. 아직은 우리의 갈 길이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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