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싯대를 드리우며
낚싯대를 드리우며
  • 제주신보
  • 승인 201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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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순 수필가

파란 하늘 맞닿은 수평선 저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 동심의 상상력을 지극하던 바다를 나는 어릴 적부터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 어른들과 바다로 백중 물맞이를 갔는데, 사람들이 갯바위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낚아 올린 알록달록한 물고기가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다.

언제면 나도 이런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까. 소망과 기대는 오랫동안 내안에 머물렀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그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은 볼락·우럭·노래미 따위의 하찮은 잡어들이었다. 하지만 곱디고운 물고기들의 잔상을 지금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러 직장도 퇴직하고 이제 마음대로 낚시를 할 수 있으니, 어릴 적 소망은 성취된 셈이다. 내가 본격적인 채비를 갖추어 낚시를 시작한 지도 20년이 훨씬 넘었다.

처음에는 직장동료 여섯이 레저용 보트를 구입해서 섬으로 낚시를 다녔다, 비양도·지귀도·차귀도·관탈 등 섬 속의 섬에서 선상낚시도 하고 갯바위낚시도 즐겼다. 선상에서 찰나의 순간을 즐기는 부시리 낚시는 손맛의 극치다. 특히 절해고도 관탈에서의 부시리, 돌돔낚시는 조사(釣師)로서는 잊히지 않는 추억이 되었다.

조행(釣行)에 나서는 날은 소풍가는 동심처럼 소박한 기대와 설렘이 고동친다. 오늘 대물 벵에돔이라도 잡히면 너무 좋겠지. 막연한 설렘과 기대를 안고 갯바위로 가는 길을 재촉한다.

코발트빛 바다는 미소를 머금은 온화한 자태로 나를 맞는다. 온갖 희로애락의 세상사를 아는지 바다에는 오늘도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때로는 침묵 뒤에 감춰진 질풍노도가 맹수의 포효처럼 무서운 기세로 다가오기도 한다. 여섯 시간 마다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은 파도가 되어 하얀 포말을 토해낸다. 사리가 되면 갯바위는 영겁의 세월을 이어온 암갈색 속살을 환히 드러낸다. 인공으로는 빚어낼 수 없는 오묘한 대자연의 수작이다. 철썩대는 파도소리는 태고의 원음으로 다가오며, 끼루룩대는 갈매기 날갯짓 소리가 공간의 적막을 깬다.

낚시는 자연에의 순응과 도전이다. 수온과 수심, 풍향과 풍속, 물때와 조류 등 인간이 조정할 수 없는 원초적 자연현상에 순응한다. 이에 찌·봉돌·목줄 등의 낚시채비로 자연에 도전하는 것이다. 채비에 따라 조과(釣果)가 좌우하기도 하나 딱히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어제는 조과가 좋았는데 오늘은 날씨가 어제와 비슷해도 전혀 입질이 없기도 한다. 변화무쌍한 대자연의 섭리를 범인(凡人)이 어찌 알리오. 그저 대물이 걸리면 어복이라 생각하고, 아니면 그만이다. 대자연의 섭리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밀물 때가 되어 넙적한 갯바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운다. 낚시채비는 바다의 표면으로 강하하여 물속에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조류를 따라 가물가물 멀어져가는 찌에 온통 정신이 박혀있다. 고기를 잡으며 세월을 낚는 강태공의 꿈은 아닌지. 인간사의 잡다한 상념을 잊은 무아지경의 시간이다.

낚싯대를 드리운 지 서너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낚아 올린 몇 마리의 고기들은 살림망에서 파닥거린다. 파고가 높아지고 바람도 거세어진다. 파도가 백설 같은 포말을 토해 내며 썰물 때와는 사뭇 다른 성난 얼굴로 변하고 있다.

관념의 조각들을 추스르며 주변을 정리한다. 낚은 고기를 통에 옮겨 넣고 귀가를 서두른다. 서쪽하늘에 태양은 곱게 번지는 노을 속으로 수줍은 듯 몸을 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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