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참마속(泣斬馬謖)
읍참마속(泣斬馬謖)
  • 제주신보
  • 승인 201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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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장강 이북의 위(魏)를 치는 제갈량의 북벌 초기는 연전연승했다. 이에 위기를 느낀 위는 제갈량의 라이벌인 사마의에게 전권을 주고 출정토록 했다. 이 사실을 전해 듣고 제갈량은 가정(街亭) 방어에 고민한다. 요충지며 중요한 군사보급로였다. 이때 자발적으로 나선 이가 마속(馬謖)이다. 그는 백미(白眉)로 유명한 마량의 5형제 중 막내다. 자만감이 가득한 그는 위의 길목에 영채를 세우라는 제갈량의 지시를 무시하고, 산 위에 군사들을 주둔케 한다. 부장인 왕평도 길목에 영채를 세워 지키자고 호소했으나 소용없었다. 마침내 독불장군식 수비 전략은 대패로 끝났다. 이 책임으로 죽임을 당한다. 제갈량이 ‘울면서 마속을 참살한다’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고사는 여기서 생겼다.

▲제갈량과 마속은 친형제 이상으로 각별했다. 마속은 어려서부터 병서를 읽어 병법에 일가견이 있는지라 제갈량이 조언을 구할 정도였다. 그 좋은 예가 칠종칠금(七縱七擒)이다. 제갈량이 남만(南蠻) 정벌에 나섰을 때 마속에게 한 수를 부탁한다. 그는 “마음을 굴복시키는 것이 상책이고, 성을 쳐서 항복을 받는 것은 하책입니다. 심전(心戰)이 상수요, 병전(兵戰)은 하수입니다”라고 했다. 이에 제갈량은 “그대가 내 폐부를 꿰뚫어 보는구나!”라며 기뻐했다. 실제로 남만의 우두머리인 맹획은 제갈량에게 잡히고 풀리기를 일곱 번이나 반복한 끝에 충심으로 고개를 숙인다. 제갈량이 북벌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맹획이 뒤통수를 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갈량이 마속을 처형하려 하자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아직 천하를 평정하기도 전에 지모가 뛰어난 신하를 죽인다면 누가 기뻐하겠느냐는 논리였다. 이에 제갈량은 눈물을 흘리면서 손무(孫武, 손자)를 예로 든다. 손무가 천하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은 법을 밝게 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법을 그릇되게 쓰면 역도들을 토벌할 수 있는 대의명분을 잃게 된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겉으로는 조직 기강을 내세웠지만, 속으로는 북벌이 꼬일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도 작용했다고 본다.

▲자유한국당이 ‘5·18 망언’ 징계와 관련해 사면초가에 처했다. 조경태 최고위원은 최근 읍참마속을 언급하면서 신속한 징계를 요구했다. 당을 환골탈태시켜야 하는 황교안 대표로선 난감하다. 민심을 따르자니 당심(黨心)이 분노하고, 당심을 따르자니 민심이 두렵다. 황의 승부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