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을 분실하다니
한라산을 분실하다니
  • 제주신보
  • 승인 2019.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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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시인·수필가

일전에 차를 몰고 귀가하면서 잠시 라디오를 켰더니 분실물 신고에 한라산이 등장했다. 전화로 청자와 주고받는 이야기에 귀가 쏠렸다. 퍼뜩 내 수필의 일부가 떠올랐다.

골목길을 몇 굽이 지나며 눈에 한라산 모습이 제일 잘 들어오는 길 모롱이에 들어선다. 한라산이 없다. 아찔하다. 내 눈이 흐린 건가, 아니면 내 의식이 휘청거리는가. 그 자리에 걸음을 박은 채 보고 또 본다. 확실히 부재다. 안개 낀 날도 아닌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한라산은 제주의 뼈대이며 영혼이지 않은가. 찾아오는 이들을 태초의 숨결로 어루만지며 마음을 둥글게 씻어 주고, 멀리서도 사계의 풍경을 드러내어 예술적 직관을 싹틔운다. 구름 나그네에게 거처를 제공하고, 거센 바람을 몸으로 막아 이곳 주민들의 척박한 삶을 어루만진다. 한라산이 없다면 이미 제주도가 아닐 것이다.

넘어진 의식을 일으키니 덩달아 한라산도 일어선다. 미세먼지로 인한 연무에 갇혀 보이진 않지만, 산은 분명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이럴 때는 안심하고 마음에 품어도 된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의식이 그리는 대로 실존하게 마련이다. 바람으로 천의 얼굴을 만들고 사랑으로 만의 얼굴을 빚을 수 있는 것처럼.

지난 한 달여 내 삶의 질은 바닥을 쳤었다. 시난고난 터져 나오는 기침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하여 동네 내과 의원을 찾았다. 열이 나거나 머리가 아프고 목이 따가운 증상이 아닌데도 감기약을 처방 받았다. 차도가 없었다.

봄이면 꽃가루 알레르기로 홍역을 치른다. 기침이 나올까 조바심으로 사람과의 만남을 멀리하지만, 피치 못할 경우는 늘 가시방석에 앉는다. 벙어리 아닌 벙어리 역은 나를 주눅 들게 하고, 가장 보편적 소통법의 단절은 절망감을 키운다.

다행히도 지난 삼 년 동안은 꽃가루의 연례행사가 빗겨 갔다. 면역력이 높아졌나 좋아했는데, 웬걸 올겨울엔 기침이 다시 나를 패대기친다. 몇몇 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대학 병원에서 이놈을 거의 포박하기에 이르고 있다. 정밀검사를 받지 않았으니 진범을 알 수가 없다. 다만 미세먼지가 범인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인간은 자연을 배신해도, 자연은 인간을 품는다. 그게 자연의 본질일 테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자연이 토악질을 해대더니 임계점을 넘어선 모양이다. 온난화니 이상기후니 하는 말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울안엔 겨우내 눈이 오지 않아 얼마나 황량했던가. 눈 밟는 발걸음은 동화 속의 풍경인 양, 얼마나 그리웠으며.

흐릿한 봄 휘장이 애처롭다. 며칠 전에는 대부분 시·도에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됐었다. 일정한 차량은 운행이 제한되거나 2부제로 운행되었고 화력발전소도 80%로 출력을 제한 받았다.

문제는 몇 번의 이런 조치만으로 공기의 질이 개선되지 않는 데 있다. 차량 배출가스와 굴뚝 연기를 줄이는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전기차나 수소차만 운행하고 석탄화력발전소는 폐쇄하는 등의 먼 지향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중국발 미세먼지 감축 방안도 서둘러야 한다.

인생길에서 건강보다 앞설 게 무엇이랴. 풍광은 차치하고 각종 오염 물질로 건강이 무너진다면 다 잃고 마는 걸. 높으신 분들이여, ‘먼지 지옥’이니 ‘공기 난민’이니 하는 말이 슬프지 않은가.

다시는 한라산이 분실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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