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왔으나
봄은 왔으나
  • 제주신보
  • 승인 2019.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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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양진 수필가

인도인들이 창안한 아라비아 숫자들의 상징체계는 생명과 의식의 도정을 잘 보여주는데 곡선은 사랑, 교차점은 시련, 가로줄은 속박을 나타낸다고 한다. 숫자 3은 두 개의 곡선으로 이루어져 하늘도 사랑하고, 땅도 사랑한다.

사랑스러운 3월이다. 겨우내 움츠리며 지냈던 보상으로 창문을 활짝 열고 파란 하늘과 따스한 햇살을 맘껏 집 안에 들여놓고 싶다. 봄은 겨울을 인내한 자의 것이라고 어느 시인이 읊지 않았던가.

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수염틸란드시아, 이오난사, 디시디아, 스투키, 관음죽, 게발선인장. 입에 붙지 않은 낯선 공기정화 식물들이 들어와 있다. 실내 미세먼지를 잡기 위한 나름의 방책이다.

일상의 골칫거리로 자리 잡은 미세먼지. 언제부터인가 뿌연 날이 잦더니 지난겨울은 삼한사미(三寒四微) 신조어까지 만들어 냈고, 그 수치는 우리의 삶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숨 쉬고 사는 것에 대해 이렇게 신경 쓰게 될지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더욱이 ‘미세먼지 매우 나쁨’ 경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제주는 누구나 다 아는 청정 지역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런 자부심도 마트에 진열된 미세먼지 마스크와 비싼 공기청정기 앞에 내려놓으며 살까 말까 갈등한다.

백세시대에 복병을 만났다. 점점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미세먼지는 호흡기와 심혈관 그리고 뇌혈관 질환의 발생을 증가시키는 1급 발암 물질이며, 특히 자동차 배기가스와 화석연료에서 발생한 초미세먼지는, 아주 작아 기도에서 걸러지지 못하고 대부분 폐부까지 침투하여 치명적이라 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싸움에서 이긴다 했는데 상대를 알수록 불안감이 더하다.

미세먼지 수치가 높을 때마다 우리는 중국의 산업화 탓으로 돌리나 정작 중국은 본인들과 무관하다며 ‘너의 것은 너의 것’이란다. 모르쇠로 잡아떼고 있다. 북반구에서 편서풍이 불 때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은 상식적인 것이라고 우리 정부가 반격했다는데 새겨들었을까.

누군가 말한다. 전 세계가 저렴한 공산품인 ‘메이드 인 차이나’에 의존하고 있는 한 환경 문제는 중국과 주변국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것이라고.

어쩜 우리는 지금 등가교환의 법칙에 따라 생활의 편리함 대신 대기오염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 모른다. 만약 이 재앙을 피할 수 없다면 미세먼지 저감 노력은 영원한 우리의 과제인 듯하다.

대중교통 이용하기,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에너지 절약하기. 무엇보다 나무를 심고 숲을 조성하면, 산림의 찬 공기가 따뜻한 도심으로 흐르면서 도시의 오염된 공기를 씻어내는, 자연 공기청정기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맑은 공기에 대한 관심도가 커지면서 숲과 주거 공간이 어우러진 숲세권 아파트 단지가 주목 받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제주도는 한라산을 가운데 둔 천혜의 숲세권 지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라산 중턱까지 이어진 무분별한 난개발.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인데, 소중함을 모른 채 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거대한 공기청정기를 망가뜨리고 있다.

머지않아 모두에게 공평한 줄 알았던 공기마저 빈익빈 부익부가 되는 건 아닌지. 봄은 왔으나 불청객 때문에 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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