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원로의 객담(客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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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1세대 인권변호사로 불리는 한승헌(85) 전 감사원장의 에세이집 ‘속 산민객담(山民客談)’은 유머와 여유로 읽는 이를 즐겁게 한다. ‘산민’은 그의 아호이고, ‘객담’은 쓸데없는 군소리란 뜻이다.

산민은 감옥에 있으면 수감자들은 누구나 애국심이 없으면서도 국경일을 기다린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가석방을 기대해서다.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1980년 5월의 봄에 세칭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된 후 연말이 다가오자 성탄절 특사 생각에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했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다가 다음 해 5월에야 석방됐다. “석방 기도는 하느님에게 했는데 업무 협조 차원에서 부처님이 들어줬다”고 적고 있다.

앞서 그는 이른바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당한 고(故) 김규남 의원을 애도하는 수필 ‘어떤 조사(弔辭)’란 필화사건으로 1975년에 구속된 적 있다. 재심 끝에 2017년 무죄를 받았으며 지난 2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했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과 관련한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당시 국내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을 시기하고 헐뜯으며 “개도 웃을 일이다”라고 하자 그는 “얼마나 기쁜 일이면 개까지 웃겠는가”라며 재치있게 응수했다. 누군가가 ‘청와대는 감옥 같은 곳’이라고 하자, 완전히 다르다며 명쾌하게 구분했다. 청와대는 들어올 때는 기분이 좋지만 나갈 때는 기분이 나쁘고, 감옥은 들어갈 때는 기분이 나쁘지만 나갈 때는 기분이 좋다고.

이런저런 자리에 이름이 오르는 것을 지나치게 좋아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물망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물만 먹고 망신만 당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그는 “특사(特使) 요청에 나는 ‘서울 본사가 좋다’는 말로 거절했다고 했다.

자신의 몸무게를 물으면 “근수로 밝히기는 싫지만, 밴텀급이고 일찍부터 구조조정을 해서 필요한 부분만 남아 있다”고 말한다. 엘리베이터에 마지막으로 탔을 때 ‘삐’ 소리가 나면 “나도 무게 있는 남자다”라는 생각이 은근히 든다고 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 논란 이후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여당과 제1야당의 지지율은 점입가경이다. 서로의 지지층이 뭉치면서 상대를 향한 입씨름도 거칠어 지고 있다. 곧 4·3보선이고, 내년은 총선이다. 설전(舌戰)이 도를 넘으면 국민들 목에서 객담(喀痰)이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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