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나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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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희, 춘강장애인근로센터 사무국장·수필가

정정하시던 어르신께서 겨우내 병원을 오가시더니 봄을 맞지 못하고 소천하셨다는 소식에 조문을 다녀왔다. 장례식장은 한산하였다. 평일이고 점심시간이 지난 이유이겠거니 하고 둘러보니 상주가 보이지 않는다. 시신을 기증하기 위하여 자리를 비웠다는 소리는 놀람 그 자체였다.

십여 년 전에 장기 기증과 시신 기증 서약을 하셨고, 한 달 전에는 자녀들에게 자기 뜻을 밝히고 놀란 자녀들을 설득하며, 유가족이 번복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유언을 따로 하셨다 한다. 고인의 육신은 이제 미래 사람들의 건강을 위하여 연구용으로 쓰일 터이고 2~3년 후에 가족들에게 돌아와 다시 장례를 치르게 된다고 한다.

나의 막냇동생은 오래 전에 신장이식을 받았다. 급성 신부전증으로 장기이식이 필요하다는 진단에 오빠가 앞장서 검사를 받았고, 적합하다는 판정에 바로 수술을 할 수 있었다. 그 후로 나는 항상 빚진 마음이었다. 가족 중에서 적합한 이가 있어 다행이었지, 우리 가정도 타인들처럼 장기이식관리센터에 등록하고 누군가의 헌신을 한없이 기다려야 했음을 알기에, 그 아픔에 조금은 동참해야 한다는 책무가 항상 마음 끝자리에 있다.

용기가 없어 스스로 장기이식관리센터를 찾지 못하던 중에, 교회로 홍보를 나왔기에 장기기증서약을 했다. 장기기증서약서의 내용을 읽고 서명을 하는 순간에도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고 가족들이 거부하여도 된다는 말에 의지하고 있던 나의 마음 또한 진실한 나의 모습이다. 그러나 동생의 마음은 달랐으리라. 환우들의 아픔을 알기에 장기이식관리센터를 찾아 기증 서약을 하였고, 동생의 신분증에는 장기기증 빨간 스티커가 늘 반짝인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2월 4일부터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있으며, 그 개정안이 오는 3월 28일부터 시행된다. 그리고 일명 ‘존엄사법’으로 불리는 이 법을 이제는 ‘연명의료결정법’으로 호칭을 바꿔야 한다는 논의 또한 활발하다. 작년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선택한 한국인이 있었다는 뉴스와 함께 죽음이 미화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높아지고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더 이상 의료행위가 치료 효과가 없다는 의사의 판정에 가족의 동의로 임종 과정만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중단할 수 있게 한 것이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본인이 임종이 임박했을 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미리 밝혀놓는 제도다.

지인의 어르신은 연명치료도 본인이 거부하셨다고 했다. 인명은 재천이니 하늘이 허락한 만큼만 살고 싶다고 하셨다 한다. 돌아오는 길에는 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내기로 했다.

나의 장기기증 서약과 연명치료 거부 신청은 죽음을 먼 미래로 느끼는 젊은이의 호기일 수 있다. 그리고 마음이 변하여 취소할지 모른다. 하지만 죽음을 앞두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삶의 나눔이 아닐까 하여 오늘도 이 결정을 유지한다.

지난 1년 동안 3만6000여 명이 연명치료중단을 선택했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인도 11만 명에 육박한다. 이들 중에 장기기증으로 삶을 나눈 이는 또 얼마나 될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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