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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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심 수필가

동네를 벗어나 산길로 들어서자 차를 멈췄다. 농로 한편에 적당히 세우고 내렸다. 가끔 아이들 외가에 다녀 올 때면 한적한 이 길을 일부러 택한다. 언젠간 이리 내려 걸어보고 싶었다. 어릴 적 밭일을 다니며 익숙해진 것들이 여기에 많다. 잘 다듬어진 네 귀 반듯한 밭. 맨발로 뛰어다녀도 좋음 직한 까만 흙. 길가 가득 피어난 풀꽃들. ‘푸드덕’, 내 기척에 놀라 날아오르는 장끼 한 마리까지. 냉기 가신 햇살에 등이 따뜻해진다. 한 숨 깊이 들이 마시자 온 우주가 내게로 온다. 들에 난 작은 길은 시간을 잊게 한다.

낯익은 길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이 곳 까지 왔다. 소로 한복판에 작은 바구니 하나 엎어놓은 듯한 무덤 한 기가 있다. 묘 둘레엔 채 잎이 돋지 않은 메마른 가지들만 앙상하고, 그래도 양지바른 곳이라 햇볕은 잘 드는지 누런 떼가 반들거린다. 어릴 적 열 살 무렵 여름방학이 끝나고 사라져버린 친구가 있었다. 소문으로 뇌염모기에 물려 저 세상으로 갔다는 것을 알았고 한참 후에 그 아이의 무덤이 여기 있다는 걸 들었다. ‘정 이월 다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 오면은.’, 통통한 몸으로 노래 부르며 고무줄놀이를 함께 하던 아이가 가버렸다. 사람이 죽으면 볼 수 없다는 걸 그 때 알았다.

예전에 없던 팻말이 붙어있다. ‘분묘이장공고였다. 주변을 보니 커다란 나무들이 이리 저리 쓰러지고 중장비로 파헤쳐진 흙더미가 군데군데 쌓여 있다. 얼마 전 까지 과수원이었던 밭에는 벌써 집들이 들어서고. 성역 없이 퍼지는 전염병처럼 개발의 붐은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리 무언가에 떠밀리듯 서둘러 무언가를 자꾸 해야만 하는 걸까. 이제 가끔 눈인사 나누던 내 동무와의 교류도 흐름 따라 어딘가로 가버린다.

나이 들면서 자주 하는 생각이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할까. 구태여 이리 많은 것들이 있어야 할까. 이 세상에 장식되어진 이것들이 없으면 과연 살 수 없을까. 무엇이든 너무 많아서 힘든 것은 아닐까. 궁금하지만 답은 쉽지 않다.

얼마 전, 입고 난 옷을 걸어놓으면 살균도 되고 새 옷처럼 보송보송해진다는 가전제품에 욕심을 낸 적이 있다. 정장입기 좋아하는 남편 옷을 매번 건식세탁 하는 것이 번거롭기도 하고 무엇보다 유기용제 사용하는 게 꺼림 칙 했었다. 알아보니 가격도 꽤 비쌌다. 요즘 아이들이 많이 쓰는 가성비를 따져보고 금방 마음을 접었다. 내가 편하자고 쓰는 가전제품들이 나의 삶을 더 불편하게 하는 원인일 수도 있음에. ‘산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고 실천 하는데 의미가 있지 기계의 버튼을 누르는데 있지 않다고 했듯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집안 곳곳에 배선되어 있는 전깃줄에 감전되어버릴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많은 에너지를 생성하려면 더 많은 에너지원이 소모되고 그만큼 이 땅의 수명도 줄어드는 게 아닐까. 일급 발암물질인 미세먼지가 재앙처럼 도시를 뒤덮은 날 불현듯 공기청정기가 답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잠시나마 편이적인 것에 의지해 보려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지금껏 남을 위해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세상을 어둡게 하는데 일조해서야 안 되는 일 아닌가.

포르르.’ 새 한 마리가 들길을 깨운다. 봉분 위에 떼를 헤치고 자리 잡은 풀 한포기가 눈에 띄었다. 어우렁더우렁, 언제부터 함께 자랐을까. 겨우내 견뎌낸 잡초가 세상을 구할 듯 짙푸르다. 시들지 않는 영적인 것들.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대할 수 없음이. 자연과 인간의 임계거리는 어디쯤일까. 어느 만큼의 지경이 저 우주에서 명명되어진 이름으로 잘 살아가는 것일까.

일급 발암물질인 미세먼지가 재앙처럼 도시를 뒤덮은 날 불현듯 공기청정기가 답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잠시나마 편이적인 것에 의지하려했던 게 부끄러웠다. 자연과 인간의 임계거리는 어디쯤일까. 어느 만큼이면 저 우주에서 명명되어진 이름으로 잘 살아간다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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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오 2019-03-22 12:17:37
참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