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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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1980년대는 과외가 금지된 세상이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실권을 장악한 신군부가 이듬해 ‘7·30 교육개혁조치’로 과외를 전면 봉쇄시킨 것이다. 서슬 퍼런 단속이 이어졌고 과외열풍은 삽시간에 자취를 감췄다.

물론 힘 있는 지도층에선 과외가 암암리에 성행했다. 소위 별장과외, 드라이브과외, 파출부과외 등 비밀과외가 판을 친 게다. 그래도 대다수 학부모와 학생들을 웃게 했다. 비싼 과외비를 마련하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던 서민가계는 주름살이 펴졌다. 학생들도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됐다.

공교육이 되살아나니 명문대학에는 ‘개천표’ 용이 수두룩했다. 특히 학원비 질곡에서 벗어난 지방고 출신들의 과외금지 예찬은 더 컸다. 지금도 친구끼리 모이면 그 얘기가 회자된다.

▲2000년 총선 당시 한나라당 홍사덕 선대위원장은 김대중 정부에 대해 무능한 정권이라며 연일 공세를 폈다. 천정부지의 사교육비가 엄마들의 허리를 휘게 해 식모살이·요구르트 배달부로 내몰고 있다고 했다.

여당은 쩔쩔맸다. 가만있자니 인정하는 꼴이요, 반격하자니 논쟁에 말려들 게 뻔해서다. 때맞춰 강남 엄마들이 들끓으면서 당정은 선거기간 내내 그 프레임에 시달려야 했다. 그럴 때 교육부는 늘 ‘공교육’을 들고 나온다. “공교육 강화를 통해 창의·인성교육을 확산시켜 사교육비를 줄이겠다.” 실로 ‘공교육 강화’와 ‘사교육비 절감’은 조건반사적이다. 국민들은 그런 상투적 수사가 영 거북하다. 하늘의 달을 보라고 손을 들어 가리켰더니 손가락만 쳐다보는 견지망월(見指忘月)의 실책을 거듭해서다.

▲지난해 초·중·고교생의 1인당 사교육비가 통계 이래 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사교육 참여학생 지출액이 매달 39만원 이상 들어갔다. 작년 한 해 사교육비 총액도 19조5000억원으로 2012년 이후 최대치다. 초·중·고교생이 1년 만에 15만명이나 줄었는데 사교육비는 외려 늘어난 것이다.

1960~70년대 우골탑(牛骨塔)이란 용어가 있었다. 소까지 팔아 학자금을 감당한 교육열을 대변하는 말이다. 요즘엔 아버지 월급만으론 부족해 엄마까지 돈벌이에 나서는 모골탑(母骨塔)까지 생겨났다.

내 자식만큼은 성공시키겠다는 부모의 자식 사랑을 누가 탓할 수 있으랴. 허나 과도한 사교육 열풍이 부모의 노후까지 망칠 수 있다는 진단도 있다. 교육당국과 위정자들이 반성문 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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