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사자 유해, 가족 품으로 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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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 한국전쟁 당시 국군 16만9000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이 중 현충원에 안장된 이는 3만여 명에 불과하다. 국방부가 2000년부터 전사자 유해 발굴을 시작했으나 2017년까지 1만1206구(국군 전사자 9879구)에 그치고 있다. 더욱이 제주 출신 전사자 가운데 1300여 명도 여태까지 유해를 수습하지 못해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방부 유해발굴감시단이 제주를 찾은 것은 의미가 크다. 20일과 21일에 걸쳐 제주KAL호텔과 서귀포 KAL호텔에서 ‘6·25 참전용사 증언 청취 및 유해발굴사업설명회’를 개최한 것은 도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했다. 대다수 도민도 제주 출신 전사자(2020명)와 미수습 유해 규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날 생존 참전용사들은 설명회를 통해 당시 전투 상황과 전장에 전우를 두고 올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전하며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한 노병은 휴전 막바지 가장 치열했던 중공군과의 강원도 금화지구 전투를 떠올리면서 한동네 두 젊은이가 전사했으나 여태까지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유가족들은 DNA 샘플 채취 방법과 절차 등에 귀를 기울이면서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6·25전쟁 당시 제주에선 해병 3·4기를 중심으로 총 8550여 명이 참전했다고 한다. 그들이 인천상륙작전, 서울수복작전, 도솔산지구 전투 등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것은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4명 중 1명이 희생했다. 이들은 누군가의 아들이고, 아버지고, 남편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잊었거나 아예 모르고 지낸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제주에서 처음으로 6·25 참전용사 유해발굴 사업설명회를 개최한 것은 늦은감은 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이번 설명회를 통해 구체적이고 신뢰성이 높은 증언이 접수됐다고 한다. ‘단 한 명의 병사도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적진에 내버려두지 않는다’라는 말을 우리도 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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