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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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수필가

정원을 돌아보다 잠시 멈춰 섰다. 앙상한 가지로 죽은 듯이 서있는 애기사과나무를 보니 문득 미안함과 신비감이 마음에 겹쳐 들어온다. 지난해 봄 화사한 꽃잎으로 터질 듯이 몸을 치장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의 감탄과 시선을 온 몸에 받지 않았던가. 그 뿐이 아니다. 빨간 열매로 울타리를 멋스럽게 장식해 주기도 했었는데 나목이 되고나니 겨울 내내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하지만 겉모습만 보고 마음이 움직이는 나의 무례에도 아랑곳없이 다가오는 봄의 태동을 묵묵히 준비하고 있을 테다. 자연의 질서가 신비하고 경이롭다.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전에 없던 생각들이 떠오른다. 우주 질서에 따라 수많은 동·식물 중 인간으로 진화되는 선택을 받았으니 무한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억겁의 세월동안 숙성과 담금질을 거쳤으리라. 귀하게 얻은 이 몸인 만큼 서둘러 그동안 소홀했던 본분에 주력해 보고 싶은 생각이 새삼스레 든다.

우리 인간의 내면에는 두 가지 성질이 반반씩 공존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천사와 같은 마음인 신성(神性)이고 다른 하나는 악한 마음인 수성(獸性)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하니 일리가 있어 보이며 공감이 간다. 이 두 가지 성질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하게 된다. 식물에 비유하면 신성은 곡식과 같아서 잘 가꾸어야만 좋은 결실을 맺게 되나 반면 수성은 잡초와 같아서 방치해 두면 제 멋대로 자라나 결국 주변에 피해를 주게 된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다를 바 없을 터,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수성에게 신성이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신성의 힘을 키워 수성의 유혹을 뿌리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옛 선조들께서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와 예절교육을 우선시 해오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인간 중심인 이기적인 사고로 인하여 해가 갈수록 사람의 도리를 중히 여기는 풍조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다. 가꾸지 못한 신성은 자취를 감추고 방치해둔 수성들이 잡초처럼 제멋대로 자라 사람들의 마음을 그릇된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작금에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들을 보면 걱정스럽다. 이제 발상의 전환을 함이 어떨까. 삼라만상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라고 했다. 모두 한 몸일 테니 서로에게 도움 주는 삶을 인생의 최고 가치로 인식되어 높아지는 지식에 걸맞게 의식수준도 함께 높아지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다.

우리 한민족에게는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삼대경전이 있다.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이 그것이다. 그 중 하느님의 가르침이라는 삼일신고신훈(神訓)’편에 기록된 문헌인 자성구자 강재이뇌(自性求子降在爾腦)’라는 구절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그 뜻인즉 스스로 도를 구하고자 한다면 너의 뇌 속에 이미 진리와 신성이 자리 잡고 있다라 함을 천명한 글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진리와 신성은 내면의 양심을 말함이리라. 고대 우리 선조들의 높은 의식의 경지를 헤아릴 수 있다.

그렇다면 내 안의 양심을 회복하는 일이 우선일 듯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심 위에 덧씌워진 오염의 때를 씻어내는 일이 요구된다. 이미 내 안에 내려와 있는 신성인 자아는 관념 밑에 묻어둔 채 편협한 지식을 망라하여 멀리서 찾으려고 기회를 허비하는 건 아닌지 내면을 들여다 볼 일이다. 양심의 거울을 맑게 닦아 순수 에너지가 살아날 때만이 참 진리와 깨달음은 만나게 되리라 기대해 본다.

살다보니 이제야 안개 속의 불빛만큼 어렴풋이 내면이 보이는듯하다. 지금까지 얼마나 주변을 위해 유익한 삶을 살아왔는지 하늘을 우러러 본다. 억겁의 세월 속에 한시적으로 주어진 시간을 육신이 다하는 그 날까지 그간 못 다한 일들을 실현하고자 마음으로나마 다짐해 본다.

석양의 노을빛이 곱게 지고나면 새벽 햇살이 더욱 환하게 밝아온다. 저 붉게 물드는 노을처럼 고운 모습을 남기고 싶다. 정원에는 올해도 애기사과나무 꽃이 어김없이 만발하리라.

 

명상 속에 참회의 시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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