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눈물
어린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눈물
  • 제주신보
  • 승인 2019.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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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능자 수필가

사계의 멜로디가 집안 분위기를 점점 강렬하게 지배하기 시작한다. 집안 식구들도 정교한 멜로디에 압도되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시디 플레어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초등학생인 손녀도 뭘 생각하는지 음악소리에 숨을 죽인 채 듣고 있다. 연주자는 지금 작렬한 한여름의 태양을 아다지오로 그려내고 있다.

 

퇴임 후 꽤 오랜만의 특별한 외출이었다. 한 후배 교장이 재직하고 있는 시골학교 어린이들의 오케스트라 공연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이 학교는 지난해부터 전교생이 참여하는 어린이 오케스트라를 창단하여 기념공연을 올리기 위해 맹연습을 해왔다.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악기를 처음 만져 본 철부지들이라 어려움이 많았지만, 방과 후 학교 선생님들의 열성 덕분에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처음에는 참여자도 적고 악기에 적응하는 속도도 느렸으나, 학생들 사이에 가족적인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연습 날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악기 연습도 중요하지만, 옆 사람과의 호흡을 맞추어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 내는 데 더 큰 흥미를 느끼는 학생들이 늘어갔다.

드디어 창단 공연을 하는 날이 왔다. 넓은 문예회관 대극장이 관객들로 꽉 찼다. 작은 시골 학교 어린이들의 공연에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는 말인가. 어린 연주자들은 두려움 못지않게 들뜬 분위기에 신바람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어린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센과 치하로>행방불명 OST', <사계>의 겨울 2악장, <천국과 지옥> 중 캉캉, <하늘나라 동화> 등 다채로운 연주를 선보였다.

비발디의 <사계>는 내가 특별히 아끼는 곡이다. , 여름, 가을, 겨울 중에서 겨울 2악장을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들려주었다. 시작 부분에서는 점점 거세지는 겨울바람을 가슴으로 느끼게 해주다가, 중간부인 라르고에 이르면 난롯가에서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는 정경이 바이올린의 선율을 타고 풍경화처럼 그려졌다. 청중들도 연주자 못지않게 사뭇 진지하였고, 연주곡이 끝날 때마다 힘찬 박수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어린 연주자들의 반짝이는 눈동자와 생기 넘치는 표정을 따라잡다가, 맨 뒷줄에서 자기 키 만큼이나 큰 콘트라베이스를 타는 덩치 큰 학생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한 때 부모의 이혼과 재혼으로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친구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반항적인 아이였다고 한다. 그러던 아이가 오케스트라 연주를 통해서 메마른 마음을 적시고 잃어버린 동심을 되찾아 꿈을 간직하고 있음에 큰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교장 선생님의 촉촉해진 눈시울은 그동안 이 어린이들이 얼마나 많은 담금질을 힘겹게 이겨냈는가를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들도 오늘처럼 큰 무대에서 받은 박수갈채를 평생 동안 가슴에 안고 살아가리라.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와 부모의 품에 안긴 몇몇 학생들은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을 눈물로 쏟아 내기도 했다. 축하 꽃다발을 한 아름씩 안고 무대에서 퇴장하는 어린 단원들의 얼굴은 드디어 해냈다는 안도감과 성취감으로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연주회의 감동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인가? 시디 플레어는 지금 <사계>의 겨울 눈 덮인 계곡을 알레그로로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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