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란 무엇이며 유교는 종교인가?’라고 질문을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교는 윤리적 실천도덕일 뿐 종교가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것이 유교에 대한 일반적 개념이다. 유교란 사람답게 사는 것을 밝히고 인간 본래의 의미를 찾아서 행복이 넘치는 대동세계를 건설하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것이며 공자에 의하여 완성된 것이다.
공자는 인간의 본성이 어질다는 인(仁)사상을 기초로 하여 인도주의를 주장하였다. 인은 사람의 원리요. 착한 마음으로서 모든 사람이 본디 타고난 고유한 인간성이다. 인간은 윤리를 실천하여 행복한 가정, 밝은 사회,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데 본의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유교의 경전은 사서오경으로 그 분야가 대단히 넓고 깊이가 지극히 깊어서 간단히 요약하여 말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 요체 중에 중요한 것 두 가지만 아래와 같이 논해 본다.
우선으로 인생론은 우주만물을 주체적으로 경영하여 가장 보람 있는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는 삶이다. 인간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즉 사랑 정의 예절 지혜 믿음의 아름다운 인간성을 개발하여 부모에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며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어른과 어린이가 질서를 지키며 벗을 믿어 의리를 지킨다.
다음은 교육론으로 인간성을 함양하여 인격을 완성하는 것을 그 이념으로 한다. 옥돌은 다듬어야 그릇이 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리를 알지 못한다. 태교를 비롯하여 대학교육에 이르기까지 지덕체(智德體)를 골고루 발달 시켜서 원만한 인격과 탁월한 능력을 배양하는 교육을 중요시해야 한다. 스승을 어버이처럼 존경하고 학생을 사랑하여 차별 없이 가르치는 걸 원칙으로 한다.
유교의 사생관은 순리적으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다는 것이다. 유교의 진리는 이승에서의 삶에 한을 남기지 않는 데 있다고 본다. 그러면 동북아시아인은 무엇을 가장 무서워하는가? 그것은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왜 죽음을 무서워하는가? 그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현세만 믿으며 이 세상은 즐거운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세상은 즐거운 곳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에게서 고민이란 이 세상에서 떠나는 것이다. 더구나 기독교 신자와 같이 신에 불려간 것도 아니고 불교도와 같이 윤회전생(輪廻轉生)하여 다시 태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육체의 죽음은 우리에게 반드시 닥쳐온다. 인간은 이를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죽음이란 무엇인가? 사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 설명이 납득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믿는다. 즉 종교가 성립되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종교란 죽음과 사후의 설명자를 말하고 있다.
이 죽음과 사후의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는 데 유교는 성공했다. 즉 유교는 동북 아시아인에게 종교로서 성공하였다. 이렇게 말하면 즉시 반론이 나올 것이다. 불교는 동북 아시아인에게 정착되고 있지 않는가라고 말이다. 그르나 그것은 틀린 견해다. 동북아시아에 있어서의 불교의 실태는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와 양상을 달리하고 있다. 즉 우리들의 불교는 유교의 조상숭배를 받아들여 소위 유교적 색채를 띤 불교인 것이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의 본래 모습과는 상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흥식 수필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제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