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선혈 속의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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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표, 제주대학교 언론홍보학과

이 땅에 봄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 ‘예’라고 할 수 있을까? 동백꽃의 붉은 선혈의 잎을 제대로 마주볼 수 있을까? 뒤늦게 희생자들을 기리는 척 글을 쓰는 내 자신이 창피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제라도 그들의 곪아터진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을 뿐이다.

71년 전 제주도는 평화의 섬이 아닌 학살터, 죽음의 섬 그 자체였다. 죄 없는 주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을 당했다. 군경 가족을 골라낸 다음, 나머지는 수십 명씩 끌고 가 마을 주변의 옴팡밭에서 모조리 총살한 ‘북촌리 학살사건’, 종달리 주민 11명이 피신해 살다가 굴이 발각되어 집단희생 당한 ‘다랑쉬굴 학살사건’ 등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수많은 학살 사례들이 있다. 한순간에 가족, 연인, 친구를 잃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울음을 속으로 토해내던 그때의 피해자들은 당시 기억을 지우지 못한다. 어떠한 해명도 하지 못한 채 그 고통과 상처는 연좌제로 대물림된다. 어떠한 억울함도 풀지 못하고,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을 혼자 안고 갔을 뿐이다. 지금 평화의 섬에는 4·3사건의 참혹함을 작품으로 표현해서 다시 자각하게 하는 예술인들과 4·3 당시 맞서 싸웠던 제주의 청년들이 있다. 그리고 비옥하고 기름진 땅 아래에는 그들의 피와 살이 재가 돼 섞여있다.

내 자신이 동백꽃을 떳떳이 마주보게 되는 그날이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학살의 증언을 듣고 온 몸을 떠는 내가 과연 그들의 상처를 마주볼 자신이 있을지 모르겠다. 붉은 선혈 속의 그날을 잊지 않는 게 내 우선임을 명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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