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농사꾼 홍쌍리
행복한 농사꾼 홍쌍리
  • 제주신보
  • 승인 2019.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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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허자, 광주대각사 주지·제주퇴허자명상원장

며칠 전 전남 광양의 ‘청매실농원’을 다녀왔다. 요즘 봄의 전령인 매화꽃이 한참 흐드러지게 피어서 온 산이 백설에 덮인 듯 아직도 축제의 뒤 끝은 매화 향을 멀리 보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광양의 청매실농원을 소개하는 일은 조금은 멋쩍은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농원의 주인 홍쌍리여사에 대한 유명세는 이미 매스컴을 통하여 전국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이 알려져 인지도에 있어서는 그 어느 탤런트 못지않게 유명인사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점은 매실의 효능도 아니요, 약 5만여 평의 부지에 5000여 그루의 매실나무에서 연간 놀라운 매출액이 창출된다는 그 자랑도 아니며 또 영화 ‘궁합’의 촬영지로서 인기를 누렸다는 그런 것도 아니다. 다만 나의 관심은 오직 가녀린 한 여인이 50여 년간을 자신이 시집을 와서 살던 백운산 자락의 밤나무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매실나무를 심어 손발이 다 달토록 농사꾼으로서 오늘의 대 ‘청매실농원’을 설립하고 매화축제 때마다 연 1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100만불수출탑’을 수상하여 기술혁신 중소기업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어떻게 이루게 되었을까? 어디 그뿐인가? 매실을 비롯한 전통식품연구와 친환경농법의 실천을 통해서 꽃 천국이라 불릴 만큼의 아름다운 농원 가꾸기에 심혈을 기울임으로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벤치마킹을 위해 수많은 이들이 다녀갈 정도로 급성장을 거듭하였다는 것도 나의 호기심을 비껴가지 못한다. 그의 유명세는 물론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손발톱이 문드러지고 허리가 휘도록 그의 매실농사에 대한 애착은 그 어느 누구도 따를 자가 없었다.

1943년 밀양에서 태어나 당차고 영리했던 홍쌍리는 집안은 유복했지만 아버지의 봉건적 사고 때문에 중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고 열여섯부터 부산 국제시장에서 일하다 장차 시아버지가 될 김오천을 만났고 1965년 광양 백운산으로 시집가서 농부가 되었다. 그로부터 약 30년간 홍쌍리는 건강과 경제적 어려움, 남편의 병수발로 시련의 나날을 보내야 하였으며 매실농사와 먹거리 연구에 매진해 1994년 청매실농원을 세웠고 1997년에 드디어 매실명인이 되어 대통령상을 받았다. 오늘의 광양 ‘청매실농원’은 그야말로 홍쌍리여사의 피와 땀과 백절불굴의 의지와 도전정신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나는 오래전 지리산 화엄사에 머물 때 몇몇 스님들과 그가 처음 출발한 초가집도 가보았고 매화밭길을 거닐면서 그가 들려주는 지나온 고달픈 얘기들도 들은 바가 있었는데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에 보니 ‘청매실농원’의 변화된 모습에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의 땀에서 풍겨나오는 아름다운 시어들과 미소를 잃지 않는 그의 멋진 모습에 뜨거운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 아울러 70대 중반을 뛰어넘은 오늘에도 호미와 삽, 괭이를 들고 매실나무를 가꾸며 세상을 향해 던지는 그의 한 마디, “인생은 파도가 쳐야 재밌제이!”라는 말에 큰 공감을 갖는다.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홍쌍리여사는 이제 우리 곁을 떠날 때까지 사표가 되고 전설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