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호(年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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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영 편집국장

연호는 군주국가에서 군주가 자기의 치세연차에 붙이는 칭호다. 연호는 근대 이전의 한자 문화권인 동아시아에서 널리 사용돼 왔다.

중국은 한무제의 ‘건원(建元)’으로 시작해 청조 말까지 연호를 사용했다.

현재 세계에서 연호를 쓰는 유일한 국가는 일본이다. 최근 일본의 새로운 연호가 ‘레이와(令和)’로 정해졌다. 기존 헤이세이(平成)시대가 30년 만에 막을 내리고 일본 역사상 248번째 연호인 레이와가 5월 1일부터 시작된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뒤 일본에서 연호는 사라질 뻔 했지만 일본 사회의 우경화 흐름과 함께 1979년 공식적으로 부활했다.

2차 대전 패전 뒤 미군이 군국주의 색채가 진한 연호의 사용을 금지하면서 일본에서 연호는 공식성을 잃었다. 한때 연호 폐지가 논의되기도 했지만 히로히토 일왕 즉위 50주년인 1975년 연호 부활 운동이 시작됐고, 이를 추진한 세력이 현재 일본 우익의 총본산인 ‘일본회의’를 구성하고 있다.

이 같은 부활 운동으로 결국 1979년 연호법이 제정되면서 연호가 공식적으로 부활했다.

▲한국사에서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최초로 ‘영락(永樂)’이라는 독자 연호를 사용했다. 신라 역시 법흥왕 때 ‘건원(建元)’을 사용한 이래 진덕여왕이 당태종에게 태평송(太平頌)을 바쳐 조공국을 자처하기 전까지 독자 연호를 사용했다.

발해도 건국 이후 계속 독자 연호를 사용했으며, 고려도 태조 왕건 이래 4대 광종 때까지 독자연호를 사용했다.

이후에는 계속해서 중국 역대 왕조들의 연호를 사용하다가 1894년 갑오개혁이 진행되면서 독자 연호인 ‘개국(開國)’을 다시 쓰게 됐으며,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이후에는 고종 재임기간에는 ‘광무(光武)’, 마지막 황제인 순종 재임기간에는 ‘융희(隆熙)’를 썼다.

해방 이후에는 임시정부 수립연도인 1919년을 원년으로 대한민국 연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일본이 연호 사용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만세일계(萬世一系·일본 황실의 혈통이 한 번도 단절된 적이 없다는 주장)라는 ‘천황제’를 고수하려는 국수적인 분위기 때문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군국주의로의 부활을 연상시킬 만큼 우경화되고 있는 일본과 이웃한 국가로서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해에 일본의 새 연호 사용을 보면서 불편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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