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그릇
  • 제주신보
  • 승인 201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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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봉, 환경운동가·수필가

숙부님 댁엔 특별한 그릇이 있다. 그 그릇은 제사가 끝나면 신줏단지 모시듯 아내의 손에 들려 우리 집으로 온다. 국을 담은 그릇과 함께 일부러 넉넉하게 장만한 제사 퇴물도 냉장고를 채운다. 우리 가족은 며칠 동안 숙모님이 주신 사랑을 먹는다.

몇 해 전 제삿날이었다. 화기애애한 가운데 파제를 했는데 숙모님이 부엌에서 그릇 하날 들고 나오셨다.

“이 그릇은 너희들 몫으로 하나 샀다. 국을 담아 갈 그릇으로 내가 보관했다가 담아 줄 것이니 그리 알아라.”

제사가 끝나면 숙모님은 쇠고기미역국을 나눠 주고 싶어 하셨다. 담아 갈 국그릇을 가져오라고 하셨는데 아내는 번번이 잊고 만다. 그러자 숙모님께서 우리 몫으로 그릇을 장만하셨다는 거다.

배려, 사랑, 나눔, 자애 모든 말을 갖다 붙이고픈 그 마음을 소중하게 받아 왔다. 흔들거리는 자동차 속에서 국물 한 방울이라도 흘릴세라 아내는 조바심으로 움켜잡는 눈치다.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나 또한 덜 흔들리게 운전을 해야 하므로 저속 운행하게 된다. 국그릇 덕분에 깊은 밤 안전운전을 하라는 깊은 뜻까지야 아니더라도 결과는 그렇게 안전하게 집에 도착해 왔다.

그릇이 비워지면 다시 숙모님 서랍장으로 돌아간다. 산수를 넘어 총기가 희미해져 가는 숙모님이지만 유별나게 그 그릇을 챙기신다. 그릇을 돌려 드리려고 부러 찾아뵙게 되고 덕분에 또 정을 나누게 된다.

숙부님의 큰아들은 나보다 한 살 아래다.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으로 고등학교를 나오자 바로 농협에 입사했다. 그렇게 똑똑한 사촌 동생이 제 집 제삿날에 지방을 쓰려 하지 않는다. 집안 대소사도 모두 내가 하잔 대로 한다며 손을 놓았다.

동생의 의중은 잘 모르나 아마 예법은 내가 더 잘 안다는 것을 인정하고 형으로 대우하려는 처신인 듯하다. 몇 번 스스로 하라고 권하다가 포기하고 으레 내 할 일처럼 일곱 위 제사와 명절을 챙기고 있다.

숙부님 댁 대소사를 비롯하여 일상의 온갖 일도 우리 부부가 참여해야 결정이 되곤 한다. 숙부님과 숙모님은 그런 우리 내외를 큰아들 위에 또 하나의 아들과 며느리 얻은 듯 대하신다. 나눠 줄 만한 먹을거리가 생기면 다녀가라 전화하는 경우도 적잖다. 지나다 들르는 날엔 손에 들려 보낸다며 기어이 뭔가를 찾아내곤 바리바리 싸 주신다. 숙부님 댁엔 국그릇만 아니라 눈에 안 보이는 따뜻한 마음 그릇이 있어 늘 당신들 곁에 가 있곤 한다.

대범한 사람을 일컬어 그릇이 크다고 말한다. 매사에 옹졸하고 자기만 아는 사람을 간장 종지만 한 그릇이라 한다. 사람이라면 비웃음은 받지 말아야 하겠다.

요즘 신문을 펼치면 지지리도 못난 정치인들의 행보가 혀를 차게 한다.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나 나라 위한 노력은 없고, 유언비어와 해코지만 무성하다.

현 정권은 과거 정권이 저지른 적폐를 청산한다고 혈안이다. 모든 걸 적폐라는 이름아래 두고 시퍼런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언제 끝날지 기다리는 것도 이젠 지쳤다.

야당도 협치보다는 사사건건 깎아내리며 불만만 토로한다. 삐친 어린 아이처럼 투정 부리다 뒤돌아선다. 서로 작은 흠이라도 찾아내면 덧대어 폭로하며 진흙탕 싸움을 벌인다.

언제면 그릇이 넉넉한 사람들이 다스리는 나라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