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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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신보
  • 승인 201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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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명상가

각오가 다른 시작이기에 이루고자 하는 의지나 거듭나야 한다는 굳은 결심은 지구에서의 시간이라는 개념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전생의 과오나 실수, 그릇된 삶을 반성하고 부족함을 채우고자 택한 소중한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특별한 약속 이후에 실현된다. 최소한의 도덕이 실종되는 현실의 안타까움에 경종을 줄 수 있는 신기한 경험이기에 숙연함을 갖게 한다.

한쪽 다리에 불편해서 간혹 독선적일 때가 있지만 조용한 침묵으로 가치를 빛내는 예술가이다. 작품에는 그만의 가격표가 붙어있다는 것을 자랑으로 알았다. 결혼에는 관심도 없어 작업실에서 기거한다는 말을 들었다. 딱히 공통점은 없지만 종종 합석한 자리에서 둘만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치명적인 단점은 매사 부정이다. 다르다고 단정 지으면 싸움닭이 되기 일쑤라 사회에 대한 불평보다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편이 본인을 위해서도 좋을 듯했으나 자존심의 문제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건강도 돌보지 않아 주변의 타박을 들어야 했다. 점차 그 빈도가 심해져 누구를 만나도 시빗거리를 만들어 피하기 일쑤요 그나마 챙겨주던 인연들조차 소식 받기를 꺼리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 후 한참이 지나 이름조차 생소해질 때 전화가 왔는데 이런 분이 시립병원에서 돌아가셨는데 책상 밑에 연락처를 남겼단다. 도착해보니 본 듯한 이들이 먼저 와서 장례 절차를 밟고 있었다. 딱히 관여할 일도 아니고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처지라 곁을 지키고 있었다. 흔적조차 못 남기는 쓸쓸한 죽음이다. 눈에 띄는 수첩이 있어 펼쳐보니 작은 글씨로 적혀있었는데 성장과정이었다. 소아마비를 앓은 후 시댁으로부터 모진 학대로 어머니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새 엄마가 온 후에는 끼니조차 챙기지 못하고 천덕꾸러기였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집에서 쫓겨나 주변 도움으로 현재까지 왔다며 감사함을 빚으로 남긴다며 살아있는 가족과 화해를 청한다는 내용이다.

급히 수소문을 해 입관 전에야 노인 한분이 오셨는데 아들아 하는 울부짖음에 차갑게 식어져 있던 시체의 한쪽 손이 올라와 흐느끼는 우는 얼굴을 감싸주더니 이내 제자리로 돌아왔다. 보고도 믿지 못할 현상이다. 오는 걸음에는 생각이 많아졌다. 전생을 들여다보니 둘의 관계는 반복이었으며 앞으로도 진행형이다. 스스로 만들어놓은 덫이고 반드시 넘어야 할 시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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