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의 100번째 생일
임정의 100번째 생일
  • 제주일보
  • 승인 201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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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업 전략사업본부장 겸 논설위원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9년 4월 11일은 우리 역사에 기념비적인 날이다. 현재의 대한민국 기틀이 된 임시정부(이하 임정)가 수립된 날이기 때문이다. 임정이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 한민족의 염원이 모인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1919년 4월 10일 밤 10시. 국내외에서 활동하던 독립지사 29명이 중국 상해 프랑스 조계지(租界地·외국인이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린 지역) 내 김신부로(金神父路)의 한 양옥집에 모였다. 신익희, 신채호, 여운형, 이광수, 이동녕, 조소앙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우선 임시의정원을 설립했다. 임시의정원은 요즘의 국회와 같은 것이다. 밤샘회의 끝에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했다. 이어 국무총리를 행정수반으로 한 임시정부를 조직하고 10개조로 이뤄진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반포했다. 회의를 마친 시간은 11일 오전 10시였다.

▲임정이 선포한 임시헌장은 근대 민주공화제 헌법 내용을 담아 오늘날 대한민국 헌법의 근간이 되고 있다. 특히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조항은 당시 일본·중국에서도 볼 수 없던 선진적인 체제였다. 모든 국민이 더불어 사는 나라를 지향하고 있어서다.

1948년 제헌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계승된 이래 지금까지 불변의 헌법 제1조로 유지되고 있는 까닭이다. 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내용이 괜히 명시된 게 아니다.

이로써 수천년 내려오던 봉건왕조의 제국의 시대가 마감되고, 백성이 주인인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대한민국이 탄생됐다. 그야말로 혁명적인 역사변혁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임시정부이지만 그 의미가 매우 뜻깊은 이유다.

▲임정은 출범 이후 1945년 해방을 맞을 때까지 망명정부로서 민족을 대표했다. 그리고 27년간 항일 독립운동을 총지휘하는 구심적 역할을 했다. 세계 독립운동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물론 그 과정서 갈등과 내분으로 수차례 해체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모두 극복하며 조국 광복을 견인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 다만 있다면 1945년 11월 임정 요인들이 환국(還國)할 때 개인이 아니라 정부 자격으로 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아마 우리의 역사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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